리셀로 먹고살다 지옥행…구로사와 기요시의 '클라우드'
타인. 어쩌면 현대인의 일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다.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남을 쉽게 증오하고 원망한다. 나랑 비슷한 줄 알았던 그 사람이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 보일 때, 호의를 거절하고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쉽게 분노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서스펜스 스릴러 ‘클라우드’는 이 같은 일상의 사소한 원망과 증오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로사와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은 일본 감독으로 3일 부산을 찾았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영화 ‘큐어’(1997)로 유명하다.

주인공 요시이(스다 마사키)는 온라인에서 '라텔'이라는 리셀러로 돈을 번다. 대량 구매한 물건을 비싸게 되팔아 이윤을 보는 그에게 물건의 품질이나 짝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목적은 그저 돈을 버는 것. 그래야 일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에 과하게 몰입해 있는 그는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그는 매순간 물건 가격을 살피고 이익이 날 때 파는 것에 신경이 쏠려있다. 나름대로 힘겹게 먹고 사는 것이다.

요시이의 무심함은 피해자를 양산했고,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온라인에 모여 요시이를 비방한다. 이들의 분노는 온라인이라는 환경과 '익명의 다수'라는 설정을 통해 극도로 증폭된다. 급기야 그를 죽이겠다는 단체가 결성된다. 외진 곳으로 사업지를 옮긴 요시이는 점차 그의 일상에 크고 작은 위협을 느끼게 된다.

'요시이를 죽이려는 단체'의 면면을 보면 매우 허술하다. 요시이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요시이를 알던 사람도 그를 죽여야할만큼 피해를 본 사람들이 아니다. '나를 무시했다', '있는 척 하는 게 재수없다' 등 다소 허무맹랑한 이유다. 심지어 이들의 허술함은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전략과 전술도 엉성하고 하나같이 사회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미 분노로 가득찬 이들에게 요시이는 그저 처단해야할 대상이고, 그를 죽이는 건 이들에게 일종의 오락거리일 뿐이다.
리셀로 먹고살다 지옥행…구로사와 기요시의 '클라우드'
이들의 존재가 공포스러운 건 바로 이런 허술함 때문이다. 요시이를 죽이려는 멤버들은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서로 신뢰하지 못할만큼 엉성하다. 이들은 요시이에게 직접 항의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요시이를 죽이는걸 보여주겠다고 선포한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이들의 분노는 그렇게 현실로 옮겨간다. 분노는 순식간에 기름에 붙은 불처럼 집단 광기로 변하고, 결국 모두가 너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아수라장이 된다.

'클라우드'라는 제목처럼 많은 설정이 구름에 낀 듯 하다. 요시이에게 분노한 사람들은 그 감정의 주체와 시작점이 명확하지 않다. 요시이를 도와주는 조수 사노(오쿠다이라 다이켄)조차 그를 돕는 이유가 선명히 제시되지 않는다. 영화는 요시이에게 조금씩 접근하던 분노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기까지 꽤 긴 시간동안 흐릿한 불안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구로사와 감독은 베일에 쌓인 위협을 섬세하게 연출해내며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을 향하는 카메라 앵글을 길게 잡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화면 여백을 활용해 피사체 인근에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공포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스다 마사키의 폭넓은 연기력이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특히 살육전을 치르고 돌아가는 엔딩 장면에서 그의 눈빛은 압권이다. 요시이는 사소한 것이라도 신뢰가 지켜지지 않으면 단호히 손절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주변 지인과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게되면서 그는 평생을 불신 속에 살게 됨을 예고한다. 그는 복합하고 허망한 눈빛으로 마지막 대사를 내뱉는다. "여기가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인가"라고.

최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