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홍련>에서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홍련과 바리다. 작품의 주인공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두 인물이 연결되어 전체 주제를 구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뮤지컬에서 2명의 인물이 공연을 끌고 가는 예는 매우 많다. 특히 국내 무대에서 라이선스 뮤지컬 <쓰릴 미>(2007)는 한동안 남성 2인극 창작뮤지컬 쏠림 현상을 만들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공연의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제작이 용이하다는 작품 외적인 이유 외에도, 사건이 2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그 자리를 여성들이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다. 2018년 <마리 퀴리>가 마리와 안느를 서로 ‘응원하는 친구’로 만들어 여성 2인 중심 서사 모델을 성공시킨 이후, 창작과 라이선스 양편에서 여성 인물 혹은 여성 배우만 존재하는 공연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베르나르다 알바>(2018), <리지>(2020), <유진과 유진>(2021), <프리다>(2022), <식스>(2023), <방구석 뮤지컬>(2024), 그리고 2024년에는 <카르밀라>, <접변> 그리고 <홍련>이 여성 2인 중심 뮤지컬로 초연되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현재 여성 2인 중심 뮤지컬이 흥행하는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작품 속 ‘여성의 연대’가 각자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에 관객이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홍련>은 홍련과 바리의 연대에 약자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는 <유진과 유진>, <식스>의 지향점과 근본적으로 동일하지만, ‘약자의 자발성’을 구체적이고 섬세한 시선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만의 특징을 더한다. 공연이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품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절규하는 홍련, 질문하는 바리

홍련은 17살 소녀다. 그런데 이 소녀는 지금 저승의 천도정에 와 있다. 저승의 차사들과 바리 앞에서 천도를 위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홍련은 재판에 적극적이지 않다. 자신은 아버지를 목 잘라 죽이고 배다른 남동생 장쇠의 팔다리를 자른 천륜을 어긴 죄인이니 재판은 필요 없다는 태도다. 뜨겁지만 냉소적이고, 스스로에게 열정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서적으로 공허하다.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홍련(위)과 바리(아래)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홍련(위)과 바리(아래)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바리는 26살에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저승의 신이 되었다. 천도정의 주인인 바리는 혼백을 달래서 원한을 씻기는 일을 하고 있다. 바리는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홍련의 절규를 침착한 태도로 듣는다. 그리고 천륜을 어겼다는 홍련의 끝없는 ‘주장’을 섬세하게 듣고 질문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바리는 집요해 보인다. 죽어야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홍련의 주장을 ‘제대로’ 끝까지 듣기 위해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자기혐오를 벗기

사실 바리는 현재 홍련의 재판을 139,998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바리는 홍련을 참고 또 참는다. 홍련이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 주장이 사실로 뒤덮일 때까지 차분하고 집요하게 상황을 주도한다. 바리의 이러한 태도는 ‘귀하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만물의 법칙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내밀한 이유가 있다. 바리가 홍련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사실 홍련은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장쇠를 해쳤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홍련은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부모의 폭력으로 방어기제를 키워 왔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언니 뒤에서 벌벌 떨며 ‘얌전히 있으라’는 부모의 말대로 행동했다. 때로는 빌기도 했고, 언니를 멀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장화의 부당한 죽음 앞에서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홍련이 용서할 수 없었던 건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이런 ‘자발성’이었다.

바리는 홍련을 통해 16살의 자신과 만난다. 재판을 139,998번째 반복하며 용서할 수 없었던 과거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한다. 바리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딸로 호명되고자 했던 ‘자발적 태도’가 고통스러웠지만, 절규하는 홍련과 달리 과거를 외면함으로써 현재를 살고 있었다.

바리는 홍련이 망상에서 벗어나도록 끝까지 돕고 장화가 되어 홍련을 위로함으로써 무한한 사랑을 전한다. 이는 바리가 과거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홍련 역시 바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비로소 바리의 진심을 알아본다.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뮤지컬 <홍련> 공연 장면 / 제공. 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과 바리의 연대에는 서로의 아픔을 ‘나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약자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위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도 아니며, 일시적으로 정서적 포즈를 취하는 것도 아니기에 매우 단단하고 진실하다. 뮤지컬 <홍련>의 힘은 여기에 있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