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인공지능(AI)의 아버지 죽다."

‘케이시 김’은 뛰어난 정보기술(IT) 기술자로 범용 AI인 ‘마이텔’의 창시자다. 그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아내는 거액의 유산은 포기한 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 하지만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전남편의 집에서 함께 새로운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전남편 케이시의 서재에 전등이 켜져 있는가 하면, 그녀가 좋아하는 피자가 배달되고, 예약하지 않은 호텔로부터 확인 연락이 온다. 마치 죽은 남편이 돌아온 듯 전남편의 새 구두가 발견되기도 한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죽은 남편의 존재감.

케이시 김은 췌장암 진단을 받고도 수술과 치료를 거부하고,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는 두뇌결합형 인공지능 ‘앨런’의 완성을 위한 연구에 몰입한다. 앨런은 프로그램과 인간의 두뇌를 즉각적으로 연동시킨 시스템으로 명령을 이행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용자의 두뇌와 동기화한다. 앨런은 시스템이라기보다는 복제인간에 가까운 궁극의 AI다.

하지만 박사의 뇌에서 이식된 그의 모든 정보, 기억, 감정은 더 이상 데이터에 머물지 않고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다. 더불어 케이시 안에 내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감정, ‘악’까지도 학습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인간의 통제 속에 머물지 않는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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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작가의 장편소설 <안티 사피엔스>는 인간이 개발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 감정인 선과 악을 학습하면서 인간과 대척 점에 서게 된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발한 기술이 스스로 진화하면서 정작 인간이 꿈꾸었던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이 된다. 이것은 오류인가? 예상하지 못했던 기술의 미래인가?

유한한 죽음과 무한한 기술.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이 아닐 때 우리는 행복할까? 이러한 화두는 영화 <원더랜드>와 자연스럽게 만난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복원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있는 세상. 어린 딸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숨긴 ‘바이리’.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를 우주인으로 복원해 소소한 일상들을 나누는 ‘정인’.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세상. 죽음이 더 이상 슬픔이 아닌 행복한 세상이다.

어느 날 사고로 누워있던 태주의 의식이 돌아온다. 그토록 바라왔던 일이지만 가상 세계 속에서 한결같은 태주와 병상에서의 부재의 시간을 오롯이 받아낸 현실의 태주 사이에서 정인은 괴롭다. 죽음을 잊은 채 고고학자로 복원돼 딸과의 행복한 생활을 이어오던 바이리 역시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에 따른 오류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태주가 현실로 돌아오면서 가상 세계와 결별한다면, 바이리는 스스로 가상 세계 속으로 침잠한다.
영화 <원더랜드>의 정인과 태주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원더랜드>의 정인과 태주 / 출처. 네이버 영화
영원한 삶은 무엇일까?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다면 그것이 기계의 힘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인간의 편리와 행복한 삶을 위해 기술은 발전하지만 그 기술은 정작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한 유명 가전 박람회에 소개된 인공지능 가전들의 놀라운 기능들을 보게 되었다. 냉장고를 열지 않아도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를 알려주고, 레시피까지 알려주는 기능. 뉴스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그럼 인간은 뭘 하겠다는 거지?"

소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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