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4일 부산 우동 CGV 센텀시티에서 열린 'CJ 무비 포럼'. /CJ ENM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4일 부산 우동 CGV 센텀시티에서 열린 'CJ 무비 포럼'. /CJ ENM
“숱한 ‘천만 영화’를 배출하며 만든 과거의 성공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고민이 많지만, 그럴수록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게 됩니다.”(윤상현 CJ ENM 대표)

‘영화의 위기’를 넘어 OTT, 드라마 등 ‘미디어 위기’가 거론되는 시점에서 국내 콘텐츠 산업의 큰형님 격인 CJ ENM이 4일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아 내놓은 해답이다. 제작비 절감, 인공지능(AI) 기술 도입, 새로운 수익모델 창출 등 다양한 해법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영화 ‘기생충’ 같은 ‘웰메이드 IP(지식재산권)’ 발굴이란 것. CJ ENM은 “다양한 영화·콘텐츠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달라”는 영화인들의 부탁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연간 1조 원의 콘텐츠 투자를 약속했다.

위기의 영화·콘텐츠 “반전의 모멘텀 안 보여”

CJ ENM은 이날 오전 부산 우동 CGV센텀시티에서 ‘CJ 무비 포럼’을 열고 영화인들과 만났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인 BIFF 개최를 맞아 영화를 포함한 미디어산업 전반의 변화를 짚어보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코로나19 이후 영화시장이 ‘흥행 양극화’ 등으로 침체를 거듭하고, 드라마·OTT 시장도 제작비용 상승 등 구조적인 어려움을 맞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날 포럼엔 CJ ENM을 비롯해 CJ CGV, 스튜디오드래곤, 티빙(TVING) 등 콘텐츠·미디어 사업을 벌이는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4일 부산 우동 CGV 센텀시티에서 열린 'CJ 무비 포럼'에서 발언 중인 윤상현 CJ ENM 대표 . /CJ ENM
4일 부산 우동 CGV 센텀시티에서 열린 'CJ 무비 포럼'에서 발언 중인 윤상현 CJ ENM 대표 . /CJ ENM
이날 포럼에서 CJ ENM은 영화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사로 나선 윤상현 CJ ENM 대표는 “BIFF가 내년 출범 30주년을 맞이하는 것처럼, CJ도 내년이 문화·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한 지 30년 되는 해”라며 “30주년을 앞둔 지금의 상황은 한국영화 산업을 영위하는 종사자들에게 아주 무겁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숏폼, 숏드라마처럼 콘텐츠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수단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을 2시간 넘게 어두운 극장에 가둬놓을 수 있겠느냐란 말도 나온다”고 했다.

위기가 ‘뉴 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흥행부진과 투자위축으로 영화·드라마 제작편수가 급감하고 있다. 서장호 CJ ENM 콘텐츠유통사업부장은 “드라마 제작비가 코로나19를 전후해 2배 올랐는데 광고수익은 급감했다”고 밝혔다. 이동현 CJ CGV 경영혁신실장은 “영화시장 관객 수 정점을 찍었던 2019년이 100점이라면 지금은 60점 수준”이라며 “문제는 반전의 모멘텀이 만들 여건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드라마·OTT 힘 합쳐야

이날 포럼에서 CJ 콘텐츠 계열사 경영진은 시장 침체를 벗어나고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극장, OTT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OTT가 영화의 관객을 뺏는다는 경쟁적, 이분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관객친화형 영화제’를 표방하는 BIFF가 개막작으로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OTT 영화 ‘전, 란’을 선정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2일 개막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을 앞둔 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의 모습. /유승목 기자
2일 개막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을 앞둔 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의 모습. /유승목 기자
장경익 스튜디오드래곤 대표는 BIFF ‘온 스크린’ 섹션 초청작인 ‘좋거나 나쁜 동재’를 예로 들며 “히트한 IP를 tvN 같은 채널이나 티빙 같은 OTT, CGV 같은 극장 개봉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원 소스 멀티 유즈’로 양질의 IP에 지속가능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현 실장도 “내부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티빙 구독자들이 비구독자보다 CGV 영화 관람 횟수가 많았다”며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경우 지난 5월 최종화를 CGV용산에서 상영했는데, 전석 매진되며 화제를 낳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주희 티빙 대표는 “시리즈와 영화 공동제작, 스핀오프, 숏폼 개발 등 IP 수명주기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OTT와 영화관 특징을 담아 디지털과 오프라인 공간 협업도 활발히 할 예정”이라고 했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 발굴도 중요한 전략으로 꼽혔다. 서장호 사업부장은 “인도, 중동 등 한국 콘텐츠의 인기나 매출이 높지 않은 시장을 어떻게 개발하는지도 중요하다”며 “신규시장 개발엔 더빙 등 다양한 투자가 필요한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4일 부산 우동 CGV 센텀시티에서 열린 'CJ 무비 포럼'에서 발언 중인 유재선 감독 . /CJ ENM
4일 부산 우동 CGV 센텀시티에서 열린 'CJ 무비 포럼'에서 발언 중인 유재선 감독 . /CJ ENM
결국은 ‘웰메이드 K-콘텐츠’

이날 CJ ENM과 영화인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선 결국 창작의 힘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국내 영화 관객이 정체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글로벌 관객을 새로운 수요층으로 삼고, 수명주기가 긴 IP를 만들려면 결국 ‘웰메이드 작품’과 양질의 창작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상현 대표는 “K-스토리들이 웰메이드 콘텐츠로 만들어져 글로벌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을 목격해왔다”며 “연간 1조 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를 지속해 콘텐츠 생태계를 선도하겠다”고 했다.

포럼에 참석한 젊은 영화인들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지속가능한 투자가 필요하다”면서도 창작의 본질도 지킬 필요가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장편 데뷔작인 영화 ‘잠’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유재선 감독은 “제작 환경 변화가 있어도 결국 작품 자체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어떻게 하면 더 관객이 몰입하게 하고,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고 했다. 티빙 시리즈 ‘LTNS’를 연출한 전고운 감독은 “산업이 바뀌고 있다지만 이야기를 만든다는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부산=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