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왼쪽 두 번째)가 심장이식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정성호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왼쪽 두 번째)가 심장이식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심장이 많이 망가져 제 기능을 못하면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국내에서 치료 성적이 가장 좋은 서울아산병원의 1년 생존율은 95%, 국제심폐이식학회 평균이 81%인 것을 고려하면 세계 최고다. 정성호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사진)는 이 병원에서 이뤄진 심장이식 수술의 40%가량을 이끌었다. 뛰어난 성적의 비결을 묻자 그는 “다른 병원보다 살짝 높은 정도이고 이식 파트에서 외과 의사가 하는 일은 크지 않다”며 겸손해했다.

○중증 심부전 환자에게 새 생명 선물

환자에 새 심장 선물하는 의사…1년 생존율 95% '세계 최고'
정 교수는 심장이 고장 난 환자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는 흉부외과 의사다. 국내에 심장이식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의사는 10명 남짓이다. 수술 과정은 물론 의사 생활이 고되고 힘들어 흉부외과에서도 심장이식을 택하는 의사가 많지 않다.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센터 소장, 판막질환센터 소장 등을 맡아온 정 교수는 2009년 첫 심장이식 수술을 이 병원에서 집도했다. 지금까지 중증 심부전 환자 380명의 심장을 다시 뛰게 도왔다. 서울아산병원 누적 심장이식 수술은 950여 건. 1000건 달성을 앞두고 있다. 이 병원 환자의 40%가량을 정 교수가 책임진 것이다.

국내에 뇌사 개념조차 없던 1992년 송명근 당시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국내 첫 뇌사자 심장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을 많이 할 땐 이 병원에서만 연간 60건 정도의 심장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일본 전역에서 연간 심장이식 수술을 70~80건 하던 때다. 국내 심장질환자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세계 심장이식 생존율은 1년 81%, 5년 69%, 10년 52%다. 이 병원 생존율은 1년 95%, 5년 86%, 10년 76%에 이른다. 이런 병원에서 주축 의료진으로 자리 잡은 계기를 묻자 정 교수는 “어릴 땐 체력이 좋았다”고 했다.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고도 했다. 선배 의사들이 잘 닦은 길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매번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진심’과 과거 성과에 머무르지 않는 ‘겸손’이 서울아산병원을 심장이식 분야 세계 최고로 이끈 비결이었다.

○이식 대기 환자, 보조장치 도움

심장이식 수술은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심부전 환자에겐 마지막 보루다. 심장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괴사하는 협심증, 심근경색증 등이 생길 수 있다. 선천성 심장질환이나 심장판막질환 등도 심부전 원인이다. 심부전 환자는 극심한 호흡 곤란을 호소한다. 착란, 불면, 두통 등도 흔한 증상이다. 맥박이 빠르게 뛰는 빈맥, 밤에 소변을 자주 보는 야뇨증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부전 진단을 받으면 우선 약물 치료부터 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부정맥 치료를 함께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런 치료에도 심장이 제 역할을 못하는 중증 심부전 환자에겐 이식밖에 방법이 없었다. 간, 신장 등은 살아 있는 기증자의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이식이 많이 발전했다. 심장은 장기 특성 탓에 이런 수술이 불가능하다. 뇌사자 기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최근엔 이식형 좌심실 보조장치(엘바드·LVAD)로 치료 공백을 일부 보완하고 있다. 심부전 환자 좌심실에 펌프를 연결해 혈액순환을 돕는 기기다. 심장이식을 받기 어려운 환자나 이식 대기 환자에게 또 다른 대안이 생긴 것이다.

엘바드를 이식하면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걷기, 달리기 등 가벼운 유산소 운동도 할 수 있어 수술받을 때까지 온전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정 교수는 “3세대 엘바드까지 나오면서 혈전 발생 위험이 줄어 최근엔 심장이식 생존율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말기 심부전 환자가 병원에서 에크모(심폐순환기)에 의지하다가 이식 수술을 받는 것에 비해 수술 성적 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기증 장기 활용 높여야

흔히 장기이식은 ‘종합예술’로 불린다. 기증자 관리부터 이식 장기의 보관·운반, 이식 대상자 수술, 수술 후 관리까지 일사불란하게 이뤄져야 한다. 임상강사(펠로) 때부터 기증자 장기 구득을 위해 전국을 다닌 정 교수는 빠르게 장기를 이송하기 위해 비행기나 기차를 멈추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했다.

국내 의료기관의 실력이 높아지면서 수술과 수술 후 관리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다만 여전히 수술할 장기를 온전한 상태로 떼어내 이송하는 과정엔 부족한 게 많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국내에선 생체이식을 제외하면 심장이 뛰지만 뇌 기능은 멈춘 뇌사자만 장기를 기증할 수 있다. 선진국 등에서 폭넓게 허용하는 심정지 사망자(순환 정지 후 장기기증·DCD) 기증은 불가능하다. 의료계에선 DCD를 인정하면 심장이식 대기 환자 수술을 두 배가량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망’에 대한 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한 탓에 관련 법이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어렵게 구한 기증자 장기를 보관하는 방식도 문제다. 미국 등에선 온도를 4~5도로 유지해 장기가 얼지 않도록 돕는 장치 활용이 늘고 있다. 추가 관리료를 받을 수 없는 국내에선 여전히 얼음과 아이스박스에 의지한다. 장기가 얼면 조직이 괴사하거나 망가질 위험이 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이식 환자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야 한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심장이식 환자들은 죄책감을 많이 느껴요. 누군가가 기증해야 살 수 있어 이식을 대기할 때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게 되고 이 과정이 쉽지 않죠. 심리치료 등이 잘 이뤄져야 합니다. 수술 후엔 면역 억제제를 잘 복용해야 해요. 이식을 받으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후 과정이 상당히 중요하죠. 심장 재활도 꼭 필요합니다.”

■ 약력

1997년 - 경상국립대 의대 졸업
2013~2014년 -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수
2015~2021년 -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센터 소장
2021년~ 현재 - 서울아산병원 판막질환센터 소장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