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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부터 현재까지 ‘대풍요’에 기여한 것은 공권력이나 투자, 심지어 과학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자유다.”

[책마을] 인류 대풍요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둔' 덕분
<당신이 모르는 자유주의>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영어 원제가 더 직관적이다. ‘나를 내버려 두면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게요(Leave Me Alone and I’ll Make You Rich)’다.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디드러 낸슨 매클로스키와 미국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아트 카든이 같이 썼다. 1942년 태어나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시카고대 등에서 교수를 지낸 매클로스키는 <부르주아의 덕목> <부르주아의 평등> <부르주아의 위엄>이라는 ‘부르주아 3부작’으로 유명하다. 3부작은 하나가 600쪽이 넘는 벽돌책들인데, 그 3부작의 정수를 모아 요약한 책이 바로 <당신이 모르는 자유주의>다.

매클로스키는 사람들이 ‘부르주아 딜’을 받아들인 데서 변화가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부르주아 딜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확산이며, 쉬운 말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뜻한다. 이와 함께 상인과 제조업자 등 이전에 하찮게 여긴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생겨났다.

부르주아 딜과 경쟁하는 것은 블루블러드(귀족주의) 딜, 볼셰비키 딜, 비스마르크 딜, 관료주의 딜이다. 블루블러드 딜은 태생적 귀족 혈통에 경의를 표한다. 볼셰비키 딜은 다 같이 나눠 갖자는 공산주의다. 비스마르크 딜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를 보호자로 받아들이라는 현대의 복지국가에 해당한다. 관료주의 딜은 행정국가다. 세세하게 규정을 마련해 두고 거의 모든 일에 허가를 받도록 한다.

사람들을 내버려 두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해야 혁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매클로스키는 ‘자본주의’라는 말보다 ‘혁신주의’라는 말을 선호한다.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세계가 부유해진 원인을 자본 축적이라고 설명하는 특정 이론을 자기도 모르게 수긍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세계를 부유하게 만든 것은 자본 투자, 노동력 배치, 토지 자산 집결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였지, 투자 자체는 필요조건일 뿐 풍요를 일으킨 주체는 아니었다”고 했다.

학교 교육도 대풍요의 핵심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산업혁명기에 경제 성장이 눈에 띄게 가속화했다. 하지만 이 기간 노동 인구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대부분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 대신 기계공, 장인, 엔지니어로 일하며 얻은 실질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비슷하게 과학, 절약, 자원, 노예 제도, 제국주의도 핵심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소득을 2~3배 늘리는 등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 수는 있지만 인류가 이전보다 30배 더 잘살게 된 것은 이런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임금 협상도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상 속의 금을 빼 오는 방식으로는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3000%까지 개선할 수 없다. 오하이오주의 한 타이어 공장 노동자라면 능숙한 교섭력을 발휘해 5~10%의 임금 협상안을 타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효과는 일회성이다. 반면 한계생산성 개념으로는 1000%에서 3000%, 심지어 1만%까지 생활 수준의 개선도 설명할 수 있다.”

대풍요는 인간의 독창성과 창의성, 혁신에서 비롯됐다. 이는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질 때, 누군가 간섭하고 딴지를 걸지 않을 때 가장 잘 발현된다.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식의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노예제가 완전히 사라진 사회, 신분의 고하가 없고 기회가 보장되며 사람들을 들볶지 않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압박이 최소한이며 감언, 설득, 수사법, 자율성, 인도주의, 관용이 허용된다. 인종 차별과 짐 크로법은 없다. 유권자와 이민자를 탄압하지 않는다. 제국주의도 없다.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공포 정치도, 불필요한 세금도 없다. 무모한 집단행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자유만 보장해주면 된다는 말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말을 하고 있다. 좌와 우, 이념을 떠나 열린 마음으로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