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수 5개월만에 마무리…"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유의미한 성과"
'속전속결' 방위비 협상 타결…美대선 변수도 분담금 부담도 덜었다
한미 양국이 미국 대선을 한 달 앞두고 2026∼2030년 한국이 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정하는 협상을 속전속결로 타결하면서 불확실한 미국 정치 지형에서 주한미군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안전장치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한국의 연간 분담금 규모를 정할 '지표'를 현행 국방비 증가율에서 이전과 같은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로 되돌린 것은 한국 부담을 낮춘 주요 성과로 분석된다.

외교부는 4일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타결 소식을 발표하며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을 보장하고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양국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협상 조기 착수해 5개월 만에 신속 결론
한미는 지난 4월 협상에 전격적으로 착수했다.

현 SMA 협정이 만료되는 시점을 2년 가까이 남겨둔 상황에 이례적으로 협상을 빨리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2기' 가능성이 있는 11월 미국 대선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SMA 협상에 '딴지'를 걸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협상을 서둘렀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SMA 협상은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에 분담금 대폭 증액을 압박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2019년 10차 때는 줄다리기 끝에 1년짜리 협정을 체결했고, 11차 때도 공전을 거듭하다가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타결됐다.

2020년 협정에 공백이 생기면서 급기야 미측은 주한미군 한국인 직원에게 무급 휴직을 시행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번에 양측은 매달 한두 차례씩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만났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 트럼프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미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협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내년에 미국 정권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주둔과 한미연합방위태세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분담 현황을 비롯해 "한미동맹에 대한 기여와 포괄적 글로벌전략동맹으로서 역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며 이와 관련해 미측이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속전속결' 방위비 협상 타결…美대선 변수도 분담금 부담도 덜었다
협상 과정에서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 추가 항목을 논의하지 않는다는 데 양측이 입장을 함께한 것도 협상 가속화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SMA 분담금의 기본 틀(인건비·군사건설·군수지원)을 유지하는 가운데 협의하자는 것을 초기에 원칙으로 정했다"며 "협의가 좀 더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도 끝나가는 입장에서 동맹을 훼손하는 트럼프 변수를 알기 때문에 최대한 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SMA가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행정 협정이어서 대통령이 협상을 뒤집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외교부 당국자는 "협약이 발효하면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약의 지위를 갖게 돼 미국이나 한국에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된다"며 "법적 안정성이 확보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정 상대국인 한국에서 국회 비준까지 받은 사안을 차기 행정부에서 쉽게 뒤집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취임 전에 우리가 국회에서 비준할 수 있도록 초당파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속전속결' 방위비 협상 타결…美대선 변수도 분담금 부담도 덜었다
◇ 분담금 연동 기준 국방비 증가율→물가 증가율로
12차 협정의 주 골자는 2026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오른 1조5천192억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반영키로 한 내용이다.

현행 11차 SMA에는 분담금 증가 기준이 국방예산 증가율과 연동해 늘어나도록 규정돼 있다.

차기 협정에선 물가를 지표로 잡게 되면 전체 방위비 분담금 규모의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 다소 덜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급격한 분담금 증가를 방지하는 상한선을 재도입하면서 한국측 요구가 상당 부분 관철된 것으로 풀이된다.

분담금이 연간 국방비 증가율에 비례해 늘어나도록 연동한 것은 트럼프 1기 시절 1년짜리 10차 SMA 협정이 최초였다.

이러한 연동 기준은 그 여파를 받은 11차 SMA 때도 이어졌고, 상한선마저 없어 한국에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엔 최초 5년 협정이던 8차와 9차 협정에서 적용됐던 CPI 증가율을 다시 연동 기준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에 따라 CPI 증가율 2%를 가정하면 내후년 1조5천192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300억∼320억여원이 올라 2030년에는 총액이 1조6천444억원이 된다.

협정 계약기간인 5년 연평균 증가율은 3.2%로 추산된다.

반면 국방비 증가율 5%를 가정할 경우 같은 기간 연평균 증가율은 5.7%로 크게 늘어난다.

서정건 교수는 "유의미한 협상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며 "특히 우리 국회가 지속해서 요구해 온 물가상승률과의 연동은 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잘된 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