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지휘 정명훈·앞줄 왼쪽)의 콘서트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소프라노 올가 페레차트코(비올레타 역·가운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임대철 기자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지휘 정명훈·앞줄 왼쪽)의 콘서트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소프라노 올가 페레차트코(비올레타 역·가운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임대철 기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라 페니체 극장이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콘서트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정식 오페라 무대만큼이나 깊은 감동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콘서트오페라는 무대 장치나 의상 없이 이뤄지는 연주회 형식의 오페라 공연이다. 1792년 개관한 라 페니체 극장에서는 많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초연됐는데, 특히 1855년 초연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로 내한했다는 것은 한국 공연사에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한 페이지로 남을 만하다.

더욱 가슴 벅찬 것은 라 페니체 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자로 손꼽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했다는 점이다.

○청중 감동시킨 마에스트로의 진심

이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포디엄에 오른 정명훈은 특유의 약음 컨트롤을 통해 시리디 시린 서곡을 연주하면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모습을 내비쳤다. 첫 오케스트라 총주부터 강한 발구름을 통해 악단과 청중에 집중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여느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는 보기 힘든 강력하면서도 디테일 강한 지휘 제스처를 통해 전례가 없을 정도의 자신감을 보여줬다. 적절한 대목마다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 그리고 악단과 솔리스트들에게 보내는 환한 미소, 2막 파티 장면에서 쉬고 있던 금관 주자들이 갑자기 합창을 하는 이벤트 등 시종일관 이 콘체르탄테를 축제 분위기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마에스트로의 진심 어린 마음 또한 청중을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라 페니체가 선사한 많은 감동 가운데 단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바로 통렬한 아름다움이다. 악단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완벽한 밸런스는 음악이 끝맺을 때까지 점점 그 강도를 더하며 베르디 음악의 음향이 얼마나 아름다워야 하는가를 여실히 증명해줬다.

마지막 비올레타 아리아에서 빛을 발한 악장의 아름다운 솔로 음향은 물론이려니와 목관들의 짙은 질감의 에너지, 침바소까지 가세한 금관의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음향 등 정명훈의 지휘하에 오케스트라는 약음에서는 선명한 음량 대조를, 강음에서는 파스텔 톤의 음향 블렌딩과 넓은 다이내믹의 개방감을 노련하게 선보였다.

○한층 성숙해진 소프라노 페레차트코

히로인을 맡은 올가 페레차트코는 화려하지만 비련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를 개성적인 목소리와 빼어난 연기로 훌륭하게 선보였다. 코로나 시기 이전에 벨리니나 도니제티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그의 강렬하되 투명한 고역과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음가들의 향연을 예상했지만, 이제는 테크니컬한 모습을 앞세우지 않고 보다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의 흐름과 캐릭터의 성격적 표현에 집중하는 단계로 접어들며 한층 성숙해진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선보였다.

테너 존 오스본은 처음엔 살짝 긴장한 듯 둔탁했지만 이내 묵직하면서도 힘이 있는 발성으로 하이톤의 페레차트코와 좋은 파트너십을 이뤘다. 2막에서 비올레타의 편지를 받고 분노하는 장면과 3막 2중창 ‘Parigio o cara’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감정의 대조가 인상적이었고, 2막 첫 아리아 ‘Lunge da lei’에서는 그의 본연의 기량을 보여줬다.

아버지 역을 맡은 강형규는 등장부터 대포알 같은 발성으로 청중을 사로잡기 시작해 아리아 ‘Di Provenza il Mar’에서는 긴 호흡과 세밀한 감정 표현, 가슴을 울리는 애절한 호소력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해 자랑스러운 한국 대표 바리톤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세 명의 훌륭한 주역 가수들과 정명훈의 여느 완전한 프로덕션을 웃도는 음악적 역량, 약식임에도 불구하고 포인트 강한 연출가 엄숙정의 노력에 힘입어 라 페니체의 한국 데뷔 무대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