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부터 색감까지…방구석 1열보단 극장이 어울리는 '전, 란'
전란(戰亂)은 ‘전쟁으로 인한 난리통’을 말한다. 영화적으로는 뻔한 소재다. 영화 제작은 물론 각본까지 맡은 거장 박찬욱은 글자 사이에 쉼표를 집어넣어 시나리오를 비튼다. 단순한 전쟁 시대극은 아니란 뜻이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작품인데도 개막작으로 파격 선정한 이유다.

영화 ‘전, 란’은 두 차례 왜란을 겪으며 양반의 아들 이종려(박정민 분·사진 왼쪽)와 몸종 천영(강동원 분·오른쪽)이 빚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다. 배부른 양반과 굶주린 노비, 백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치는 왕의 측근과 남쪽으로 내려가 맞서 싸우는 의병 등 영화 내내 이분적 대비가 드러나는 대결 국면이 전체적인 얼개다.

‘싸움’을 뜻하는 전(戰)은 목적성이 강하다. 맞서 쓰러뜨릴 외부의 적이 분명하다. 양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팔려가는 바람에 노비가 된 천영의 삶은 전에 가깝다. 살아가는 이유가 오직 ‘면천(免賤)’에 있어서다. 귀한 몸인 도련님의 ‘맞는 몸종’으로 회초리에 신음하면서도 밤새 검을 휘두르고 결국 대리수험생으로 나서 종려를 장원급제시키는 것도, 7년 동안 왜적을 격퇴하는 것도 결국 공을 세우면 주인님과 나라님이 해방해 줄 것이란 기대에서 나온 행위다.

반면 ‘어지러운 상태’를 뜻하는 난(亂)은 흐릿하다. 종려의 삶에서 명확한 건 그의 신분과 가지런한 옷매무새뿐. 대대로 무과급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검을 들기 싫고, 번번이 과거에 떨어져 몸종에게 맡겨야 할 만큼 실력에 자신도 없다.

영화는 돌고 돌아 종려와 천영이 재회하며 최종장에 돌입하지만, 왜장 겐신까지 함께 칼을 섞는 점은 그간 비슷한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입체적인 장면이라 흥미롭다. 종려와 천영의 오해와 반목엔 신분제라는 구조적 병폐도 있지만,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엮여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원하고 박력 있는 전개가 강점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지 않는다.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영화로, 극장과 달리 지루하면 언제나 시청을 그만둘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 특성이 반영됐다. 전작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강동원이 보여준 화려한 장검 액션이 살아 있고, 신분제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불평등과 무능함을 보여주는 선조를 연기한 차승원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에서 이몽학을 연기하며 평등한 세상을 외치던 모습과 오버랩돼 재밌다.

화제성과 대중성 면에서 눈길을 사로잡지만, 극장에선 만날 수 없다. 오는 11일부터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다. 액션 등 연출과 미술, 음악 요소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스트리밍 환경보단 스크린이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부산=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