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미역·가라오케가?…미술의 금기를 흔드는 전시
보통의 미술 전시에는 금기(禁忌)가 여럿 있다. 먼저 작품을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다른 관람객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정숙을 지키는 것이 상호 예의다. ‘눈으로만 보세요’ ‘촬영하지 마세요’ 등 경고 문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는 전시장의 통념을 흔드는 전시다. 관객은 작품 위에 둘러앉는 것은 물론 곳곳에 놓인 대본에 따라 역할극에 참여한다. 미역과 다시마가 걸린 공간에선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할 것을 권하고, 가라오케를 옮겨 놓은 설치작품에는 ‘자유롭게 노래를 따라 부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국내외 작가 11개 그룹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교류 협력 기획전이다.

스위스 아트 바젤 등 글로벌 아트페어의 고상한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플럭서스 계열이다. 스위스는 1916년 기존 예술 형식의 전복을 표방하며 형성된 다다이즘의 본고장인데, 이들의 실험적인 정신을 계승한 이들이 플럭서스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놓인 ‘스코어’ 지시문이다. 스코어는 퍼포먼스를 위한 안내문을 의미하는데, 주로 1960년대 플럭서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활용됐다. 10개의 ‘도래하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프로젝트’는 관객을 서로 마주 보게 하거나 눈을 맞추게 하는 등 관객의 접촉을 유도한다.

‘인투 더 리듬’이라는 전시 제목에 걸맞게 소리를 활용한 작품이 다수다. 손윤원의 ‘음표’(2024·사진)가 단적인 예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장판처럼 놓인 작품에 앉아야 한다. 작품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 작업의 진동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다.

스위스 취리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팔로마 아얄라의 ‘가라오케 리딩’(2019)은 노래방을 전시장에 옮겨왔다. 작품에선 페미니즘 작가인 글로리아 안잘두아의 책을 각색한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섞인 가사는 유색인종 성소수자 여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혼종적 언어’를 상징한다. 전시 연계 워크숍에 참여한 관객은 이를 따라 부르며 이런 낯선 언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