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의사 수 문제, 페이퍼 갖고 논쟁해야
의사 연봉은 2016~2022년 연평균 6.4%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반 근로자의 평균 임금 증가율은 3.5%에 불과하다. 의사의 임금 증가율이 다른 직종 종사자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고소득 직업 상위 25개 중 15개가 의료 계열에 속해 있다고 한다. 이래서 그간의 의대 열풍이 전혀 놀랍지 않다. 변호사의 평균 수입이 높았던 시절, 문과 대학생들이 사법고시에 매달려 ‘고시 낭인’이 생겼던 현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르는 사과값은 사과가 부족하다는 신호이고, 내리는 사과값은 사과가 남아돈다는 신호다. 노동시장도 다르지 않다. 의사 임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증가했다는 것은 의료 서비스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계는 활동 의사 수가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실제로 의사 증가율은 한국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임금 추이를 보면 의사 수 증가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건수는 2019년 기준 OECD 국가 중 한국이 1위이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5위에 불과하다. 이 통계는 한국의 의사들이 다른 나라 의사에 비해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보는 ‘중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 입장에서도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해 보인다.

사과값이 오른다고 정부가 나서서 사과 재배자를 늘리자고 하지 않는다. 사과 재배는 진입 장벽이 없고 사과를 먹든 안 먹든 우리 삶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는 다르다. 정부가 의사 면허제와 입학 정원제를 통해 진입 장벽을 만들었고 독점적 지위를 보장했다. 의료 서비스는 누구에게나 공급해야 하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은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의사 수를 조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에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의사 수를 왜 정부가 조정하느냐고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의료 시장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의사의 평균 연봉 증가율과 OECD 통계를 보고 의사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리더라도 실제 문제는 의사를 어느 정도 늘리냐다. 정부는 애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2000명 의대 증원을 추진했고 이 숫자가 과학적 근거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보고서는 20여 명의 전문가가 집필한 방대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개선 여지가 있기는 하나 과학적 방법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보고서는 인구 고령화를 고려한 미래의 의료 수요와 의사 1인당 의료 공급량을 예측하고 이에 따른 적정 의사 수를 도출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론을 쓰고 어떤 가정에 근거하냐에 따라 적정 의사 숫자가 달라진다. 부족 숫자는 방법론에 따라 상이하다. 일부 결과는 의사가 과잉 상태에 이른다는 결론도 도출한다. 따라서 10년 후 의사 수요를 예측할 때 하나의 추정치가 절대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현재 정부가 당초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유연성을 갖는 것은 과학적 결과의 한계를 존중하는 태도로 보인다.

반면 의사단체들은 과학을 배운 전문가 집단이라기보다는 무모하고 고압적인 이익결사체처럼 보인다. 정부가 718쪽의 연구보고서에 근거해 제시한 정책에 반대한다면, 적어도 반대의 합리적 논거를 담은 짧은 보고서라도 작성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진지한 문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조정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제3자에게 의뢰해 그 결과를 국민에게 보인 뒤 반대하더라도 해야 한다. 무조건적 반대는 의사 집단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이를 수용해 휴학하는 후배 학생들에게도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오랜 의정 갈등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의사단체는 정부가 의료 독점시장을 조성한 당사자로서 의사 수를 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제 정부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정부도 의사가 의료 서비스 공급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수용한다는 자세로 대화에 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