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에서 동남쪽으로 180㎞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 라용. 56만 명이 거주하는 소도시인 이곳은 요즘 ‘중국판’이다.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중국 비야디(BYD)가 최근 연 1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가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중국 메이커인 창안차(연 생산능력 10만 대), 광저우차(5만 대) , 상하이GM우링(1만 대) 등도 이르면 연말부터 전기차 생산을 시작한다.

6조원 동남아 전기차 시장 韓·日·中 '삼국지'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일본의 ‘텃밭’인 동남아시아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동남아 맹주’ 일본뿐 아니라 ‘떠오르는 복병’ 중국과도 맞서야 한다.

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모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동남아 전기차 시장은 2029년 47억달러(약 6조2700억원)로 올해 11억4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대비 네 배 넘게 커질 전망이다. 동남아 전기차 시장만 놓고 보면 최강자는 중국이다. 중국 업체들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6개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52.1%에 달했다. 2021년 7.3%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또 다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관계자는 “지난 2분기 중국 업체들의 동남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6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동남아 전기차 시장을 휩쓸고 있다. BYD의 ‘아토3’는 태국에서 3만3400달러(약 4421만원)에 팔린다. 테슬라 모델Y(5만3000달러)의 3분의 2 수준이다. 상하이GM우링은 인도네시아에서 ‘에어EV’를 1만6000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현지에서 팔리는 현대차 아이오닉 5(4만9000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중국 업체들은 미국과 유럽이 관세장벽을 끌어올리자 앞다퉈 동남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동남아는 중국 제품에 별다른 차별을 두지 않는 데다 대대적인 전기차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자국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30%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내년까지 전기차 공장을 완공한 기업에 수입 관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중국의 공세에 밀리던 일본도 반격에 나섰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도요타도 내년 말까지 픽업트럭 ‘하이럭스’ 전동화 모델을 개발해 태국에 선보일 방침이다. 픽업트럭은 태국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차종이다.

혼다는 태국 프라찬부리 공장에서 첫 전기차 ‘e:N1’을 생산·판매할 계획이다. 이스즈는 태국에 5년간 1조원 이상을 투자해 픽업트럭 ‘디맥스’ 전동화 모델을 생산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에는 부담이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등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기아도 태국에 신규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커지고 있는 동남아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한·중·일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