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업계의 ‘슈퍼 을(乙)’로 통하는 ASML의 수장이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네덜란드 시골 목재 창고에서 시작한 작은 기업이 어떻게 30여 년 만에 노광(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작업) 기술 하나로 세상을 쥐락펴락하게 됐는지를 엿볼 수 있는 동시에 도전과 혁신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한다.

2008년 경력직으로 입사한 크리스토퍼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가 ASML의 최대 성공 배경으로 꼽은 건 개방형 인재 경영이다. 세계 각국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다국적 인재들이 회사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CEO 교체 후에도 회사 체제가 바뀌지 않는 시스템 경영을 정착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140여 개국의 인재가 ASML로 모였고 이사회 멤버 5명의 국적도 4개로 다양하다. 푸케 CEO도 네덜란드가 아니라 프랑스 출신이다. 푸케 CEO가 “지구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과 일하는 사치를 누리고 있다”고 자평할 정도다. 그러면서 그는 “반도체산업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며 직접 고교와 대학에서 강연하며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ASML 주니어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에서도 반도체 엔지니어링 수업을 하고 있다.

푸케 CEO는 정부 역할의 중요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산업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기업이 물과 에너지 같은 인프라에 접근하는 게 쉬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ASML의 인재들이 개발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에 대해 “아름답고 경이롭다”며 찬사를 보냈다.

한국 메모리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가 세계 정상급이긴 하지만 ASML처럼 스스럼없이 압도적 1위라고 자화자찬할 제품이 몇 개나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 의대반에 들어가기 위해 목매고 갖가지 이유로 반도체 공장 세우는 데 딴지를 거는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의 행태도 돌아봐야 한다. 초격차의 경쟁력 확보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