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대표 복지 정책인 ‘디딤돌소득’의 대상자가 자립에 성공한 비율이 전년보다 크게 상승하는 등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협의해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수급 후 자립 비율 8.6%

시는 7일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24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을 열고 디딤돌소득 시범사업 2년 차 결과를 발표했다. 디딤돌소득은 가구 소득이 기준소득(중위소득 85%)과 재산 일정액(현재 3억2600만원)을 밑도는 가구에 부족분의 절반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실험적인 정책이다. 무분별하게 현금을 살포하는 기본소득과 달리 가구 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이다.

시는 2022년 7월 1단계에 참여할 484가구(중위소득 50% 이하)를 선정한 데 이어 지난해 2단계로 1100가구(중위소득 85% 이하)를, 올 4월엔 가족돌봄청년과 저소득 위기가구를 중심으로 총 492가구를 추가로 뽑았다.

연구진은 정책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단계별로 1039가구와 2488가구의 비교 집단을 뒀다. 중간 평가는 이 가운데 다른 시·도로 전출하거나 도중에 사망한 이들을 제외하고 1단계 1523가구와 2단계 3588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공인된 행정 자료를 토대로 삶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현금을 주면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는 우려와 달리 근로소득이 증가한 가구만 31.1%에 달했다. 1차 중간조사(21.8%) 때보다도 9.3%포인트 상승했다. 디딤돌소득을 받은 뒤 경제활동을 시작한 가구도 비교집단 대비 3.6%포인트 높았다.

근로소득 증가로 수급자 자격에서 벗어나 자립에 성공한 탈수급자 비율은 작년(4.8%)보다 3.8%포인트 오른 8.6%로 집계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기존 복지 제도를 통해 생계급여를 지원받는 서울 내 가구의 탈수급 비율(0.2%)보다 40배 높은 성적표다.

○오세훈 “전국으로 확대할 것”

소비 증가세도 두드러졌다. 수혜 가구는 비교군보다 식료품, 교통비 등을 더 많이 지출했다. 수혜 가구는 2년 동안 월평균 60만6000원을 소비했는데 이는 비교 집단 가구(56만6000원)보다 7.1% 높은 수치다. 의료 서비스(18.9%), 교통(10%), 주택 관리(7.2%) 부문에서도 소비 지출이 많았다. 교육 부문에서는 비교 집단(월평균 1만1000원) 대비 72.7% 많은 1만9000원을 썼다.

오세훈 시장은 “생활이 어려울수록 현금을 바로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소비가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데 연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해외 석학들도 이 같은 디딤돌소득을 놓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데이비드 그러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 성장을 위해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저소득층은 그런 여력 자체가 없다”며 “(디딤돌소득과 같은) 저소득층 지원 제도가 이런 세대 간 재분배 효과를 발휘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뤼카 샹셀 세계불평등연구소 공동소장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복지 정책 덕에 저소득층이 노동시장에 더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는 다양한 증거가 있다”며 “서울시 디딤돌소득을 확대 적용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오 시장은 디딤돌소득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이 정도 성과가 나왔다면 긴밀한 소통과 정보 공유를 통해 (중앙정부와) 깊이 있는 토론에 나서야 할 때”라며 “(보건복지부가 시행 중인) 다른 복지 제도와의 통폐합 등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지난달 진수희 전 복지부 장관을 서울복지재단 대표로 영입한 데 이어 지난 2월 양성일 전 복지부 차관을 ‘디딤돌소득 정합성 연구 태스크포스(TF)’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