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사진=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 /사진=연합뉴스
출근길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기저질환이 악화된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정한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 김주완 판사는 근로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김 판사는 "이 사건 상병(뇌출혈)은 원고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근을 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발병했으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3호 나목에서 정한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뤄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A씨는 경기 파주의 한 컨트리클럽에서 라커룸·사우나 관리, 청소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2019년 3월 오전 4시 37분경 출근길에 차량을 운전하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의 갓길에 설치된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A씨는 병원에 옮겨져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이후 그는 뇌출혈 발병이 업무상 질병 또는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업무와 뇌출혈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결정을 내렸다. 근로복지공단은 뇌출혈이 교통사고로 인한 외상과 관련이 없는 자발성 뇌내출혈로 확인되고, 교통사고에 앞서 뇌출혈이 선행된 것으로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발병 전 1주간 업무시간이 직전 2~12주간 업무시간보다 30% 이상 증가하지 않았고, 불규칙한 교대제 근무로 인한 업무부담 가중요인은 인정되나 그 외 요인은 인정되지 않아 뇌출혈 발병에 업무적 부담 요인은 높지 않다고 봤다. 또 A씨가 이전에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 등으로 치료받은 이력이 있는 점도 처분의 근거가 됐다.

공단 처분에 불복한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출근을 위해 3시경에 일어나 운전하던 중 졸음운전을 해 사고가 났고, 차량 내부에 연기가 가득 차고 가스 냄새가 나는 등 급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교감신경계가 항진돼 혈압이 상승하면서 뇌출혈이 촉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적절한 휴식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등 업무상 과로를 했을 뿐 아니라 교대제 업무를 하면서 근로 시간이 자주 변경돼 생체리듬이 깨진 것이 원인이 됐다"고도 덧붙였다.

김 판사는 A씨 손을 들어줬다. 김 판사는 "교통사고 직후 원고의 의식상태가 명료하고 동공 반응도 정상이었다는 점은 뇌출혈이 교통사고에 선행했다고 볼 수 없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며 "원고가 새벽조 근무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전 5시경까지 출근하기 위해 오전 4시경부터 운전을 하다가 졸음운전을 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판사는 진료기록 감정촉탁 결과를 근거로 "원고는 교통사고 직후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에 처해 급격한 혈압상승을 촉발할 수 있는 정도의 상당한 놀람과 긴장, 흥분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이어 "원고가 보유하고 있던 기저질환인 심장질환과 고혈압이 언제든지 뇌출혈이 발병할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볼 만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원고는 2010년 4월경부터 뇌출혈 발병 시까지 8년 이상 2개 회사와 이 사건 사업장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근무를 해왔다"며 "적어도 출근 중에 발생한 교통사고가 원고의 기저질환에 겹쳐서 뇌출혈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원고와 피고 모두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이 확정됐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