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고, 군생활이 편했더라도 음악 열정이 뜨거웠을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코난의 맛있는 오디오
결핍은 나의 힘
결핍은 나의 힘
어김없이 국군의 날이 찾아왔다. 10월의 시작 그리고 얼마 후면 나의 생일도 있다. 가끔 국군의 날이 되면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혹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같은 노래가 떠오른다.
나는 신병 훈련소에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되뇌며 마치 가시면류관을 쓰고 받는 핍박을 이겨내려는 듯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대에 배치되어서도 음악을 못 들으니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틈이 아주 약간 나서 수첩에 듣고 싶은 음반이나 곡명을 몰래 적어놓았다가 들켜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 생각났던 음악들은 지금과 달리 미국의 포크 음악이나 영국의 포크, 록 음악 등이 주류였다. 밥 딜런, 조안 바에즈부터 시작해 미국의 피트 시거, 알로 거스리, 닐 영, 데이빗 크로스비, 필 옥스, 팀 하딘, 팀 버클리 등등 당장 떠오르는 뮤지션이 수십 명이다.
평생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영국의 어느 시골, 아일랜드의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을 상상했다.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뉴포트의 벨에포크 시절을 그렸다. 그런 노래들로 남루한 청춘을 버틸 수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후 재즈나 클래식 음악 그리고 오디오 파일로서 살면서 음악에 더해 음질에 많이 치중해 음악을 들었다. 국군의 날을 맞이해 예전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그때 노트에 적었던 음반들을 엘피로 듣고 싶어졌다. 생각난 곳은 페이스북에서 언젠가 봤지만 이내 잊고 지냈던 레코드 가게. 아마도 그곳에 가면 옛날 생각에 엘피 과소비를 할까 무서워 뇌에서 일부러 기억을 지운 듯하다. 하지만 기억의 편린이 조금 남았던 듯 어느새 나는 그날의 일정을 엘피 사냥에 맞추어 짜기 시작했다.
일단 시청실에서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일찍 나와 냉면집으로 향했다. 여름이면 거의 일요일마다 가는 단골 냉면집이다. 냉면은 역시 여름보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먹어야 더 감칠맛 난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시문집에도 있지 않은가.
군대 가기 전에 처음 알게 되었으니 20년은 넘게 다닌 것 같은데, 냉면집에 오면 20대 시절 문 앞에서 대기하던 생각이 슬며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는 출입문 바로 옆에 1인석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먹으면 냉면 가격이 반값이었다. 누추한 문지방 바로 옆의 자리였지만 그 자리가 배석 되길 기다렸다. 운이 좋게 1인석에 앉아 혼자 먹는 냉면은 왠지 모르게 따뜻했다. 어느새 냉면으로 이른 저녁을 해치운 뒤 엘피 가게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 많은 엘피가 눈에 익었다. 많이 잊힌 듯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커버 아트웍에서 일부는 곡명 뿐 아니라 멜로디도 생각이 나는 곡들이 있었다.
문제가 이런 음반들을 발견하면 평소 나름 절제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하염없이 무너져버린다는 것. 주섬주섬 엘피를 뽑아놓고 나니 꽤 무겁다. 맞추어 주인장이 커피를 탁자 위에 놓고 간 모양이다.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지칠 시간이 되어서야 커피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꿀꺽꿀꺽 마셨다. 조금 더 힘을 내 전체를 둘러보고 엘피를 계산대로 가져갔다. 알고 보니 나의 존재를 주인장이 알고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엘피에만 정신이 팔려 눈에 빨갛게 엘피를 향하다가 시선이 오디오로 향했다. 간만에 보는 명기들이다. JBL K2 S5500이다. 우선 중앙을 가로지르는 혼 타입 개구부가 입을 쫘~악 벌리고 있다.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통해 소리를 내는 유닛으로 좁은 개구부를 통해 소리를 멀리 보낼 수 있으며 그만큼 직진성이 높아 시원시원하다.
우퍼는 무려 30cm 구경의 우퍼 두 개를 사용해 혼 유닛 상하로 배치했다. 이른바 가상 동축형 설계로서 트위터와 미드 우퍼를 동일한 축에 위치시키지 않고도 마치 동축 스피커 같은 시간 축 정확도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이 당시 이후 JBL은 원가 절감에 더해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색이 희석된 면이 많다. 이 외에 나도 정말 좋아해 몇 번을 사용하곤 했던 플리니우스 SA100 파워앰프 그리고 매킨토시 프리앰프가 눈에 띈다. 플리니우스 파워앰프는 정말 오랜만이다. 이 파워앰프는 생긴 건, 마치 미국산 같은 느낌이 있다. 마크 레빈슨이나 크렐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 뉴질랜드 브랜드다.
흥미로운 건 클래스 AB 증폭을 통해 묵직하고 펀치력 높은 사운드를 들을 수도 있고 클래스 A 증폭을 통해 힘을 약간 빼되 중, 고역에 하늘거리면서 투명한 질감 위주의 사운드를 즐길 수도 있다. 그렇다. 클래스 AB, A 선택이 가능한 파워앰프다.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클래스 A 증폭으로 한껏 음악적 열기를 끌어올려 듣던 때가 그립다.
사실 이 파워앰프를 보면 그 성능도 성능이지만 그걸 구하기 위해 애쓴 생각이 먼저 난다. 여유롭지 못한 생활에 수백만 원대 앰프를 백방으로 구했지만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매물을 발견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고 가지고 있던 다른 오디오는 물론 자주 듣지 않던 음반까지 희생시켜 저 파워앰프 한 대를 손에 넣었다.
육참골단(肉斬骨断)인가, 이대도강(李代桃僵)일까? 음반은 언제든 여유가 생기면 다시 구입할 수 있지만 그 파워앰프는 너무 귀해서 그때 아니면 구하지 못할 것만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간절함이었겠지. 한편, 턴테이블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언뜻 마이크로세이키 BL77 같다. 오일 댐퍼 달린 제짝 MA505 톤암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주인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피를 좋아하는, 아니 광의적으로는 아날로그 시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되고 아날로그 포맷에 기록된 컨텍스트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느껴지는 공감이란 것이 있다. 실제로 이 가게에 놓인 음반은 모두 아날로그 시절 음악들이다. 한편, 음악은 물론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포맷이 전성기였던 시절 혹은 CD라는 디지털 공룡이 그 자리를 찬탈했지만, 여전히 엘피가 사랑받던 과도기에 나온 오디오다.
오디오는 단순히 물건이 아니다. 그 시대의 시대상과 음악 감상 패턴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담는 그릇, 즉 포맷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첨단으로 진화한 지금의 오디오가 더 좋아졌을까? 물론 좋아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음악과 오디오에서 엔지니어링과 함께 반드시 다뤄야 할 건 음향 심리, 음악을 인지하고 어떻게 소화해 내면화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도 좋은 오디오 많이 나오지만 생각해 보면 20세기 말이 기술과 음악 모두 지금보단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아니, 아날로그 기술은 그 당시에 이미 절정을 찍고 내려오고 있었다.
20세기는 제작자들도 좀 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기인 듯하다. 기기에 따라서 음악도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아이돌 프로듀서 한 분은 현세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어떤 시선으로 편집해 내는가가 중요한 세대라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거대 자본이 들어오기 이전에 제법 순수했던 음악가가 품은 컨텍스트는 그 당시 하드웨어로 들을 때 극적인 시너지가 흘러나온다. 여러 생각에 빠져 음악을 좀 더 들었다. 주인장이 틀고 있는 음악이 궁금해서다. 여기서 정신 줄을 놓고 방금 입고된 엘피 몇 장을 또 주섬주섬 추가로 구입했다. 어떤 것은 과거에 국내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던 음반이었고 당시 CD 혹은 카세트테이프로 들었던 음반이다.
어떤 음반은 제대한 후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을 가지고 호기롭게 단골 레코드숍에 가서 수입 반으로 구매했던 앨범이다.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던 시절이다. 아날로그 시절과 디지털 시대가 혼재했던 10대와 20대 그 언저리의 추억까지 모두 소환되는 음악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음악은 음반에 담겨 하드웨어를 통해 다가왔고 그것은 다시 사람과 시간으로 연결됐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지금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엘피 비닐봉지 한 개 정도 채울 정도의 중고 엘피는 일시불로 구입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드는 한 가지 생각. 아마도 20대의 결핍이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열정에 불을 더 활활 지폈는지도 모른다. 너무 여유롭게 살아서 음반 따위는 너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면 혹은 군대에서 모진 훈련과 근무를 버티면서 음악을 상상만 하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결핍은 나의 힘이다. 오디오 평론가 코난
나는 신병 훈련소에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되뇌며 마치 가시면류관을 쓰고 받는 핍박을 이겨내려는 듯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대에 배치되어서도 음악을 못 들으니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틈이 아주 약간 나서 수첩에 듣고 싶은 음반이나 곡명을 몰래 적어놓았다가 들켜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 생각났던 음악들은 지금과 달리 미국의 포크 음악이나 영국의 포크, 록 음악 등이 주류였다. 밥 딜런, 조안 바에즈부터 시작해 미국의 피트 시거, 알로 거스리, 닐 영, 데이빗 크로스비, 필 옥스, 팀 하딘, 팀 버클리 등등 당장 떠오르는 뮤지션이 수십 명이다.
평생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영국의 어느 시골, 아일랜드의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을 상상했다.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뉴포트의 벨에포크 시절을 그렸다. 그런 노래들로 남루한 청춘을 버틸 수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후 재즈나 클래식 음악 그리고 오디오 파일로서 살면서 음악에 더해 음질에 많이 치중해 음악을 들었다. 국군의 날을 맞이해 예전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그때 노트에 적었던 음반들을 엘피로 듣고 싶어졌다. 생각난 곳은 페이스북에서 언젠가 봤지만 이내 잊고 지냈던 레코드 가게. 아마도 그곳에 가면 옛날 생각에 엘피 과소비를 할까 무서워 뇌에서 일부러 기억을 지운 듯하다. 하지만 기억의 편린이 조금 남았던 듯 어느새 나는 그날의 일정을 엘피 사냥에 맞추어 짜기 시작했다.
일단 시청실에서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일찍 나와 냉면집으로 향했다. 여름이면 거의 일요일마다 가는 단골 냉면집이다. 냉면은 역시 여름보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먹어야 더 감칠맛 난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시문집에도 있지 않은가.
시월 들어 서관에
한 자 되게 눈 쌓이면,
이중 휘장 폭신한 담요로
손님을 잡아두고는,
갓 모양의 냄비에
노루고기 전골하고,
길게 뽑은 냉면에다
숭채 무침 곁들인다네.
군대 가기 전에 처음 알게 되었으니 20년은 넘게 다닌 것 같은데, 냉면집에 오면 20대 시절 문 앞에서 대기하던 생각이 슬며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는 출입문 바로 옆에 1인석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먹으면 냉면 가격이 반값이었다. 누추한 문지방 바로 옆의 자리였지만 그 자리가 배석 되길 기다렸다. 운이 좋게 1인석에 앉아 혼자 먹는 냉면은 왠지 모르게 따뜻했다. 어느새 냉면으로 이른 저녁을 해치운 뒤 엘피 가게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 많은 엘피가 눈에 익었다. 많이 잊힌 듯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커버 아트웍에서 일부는 곡명 뿐 아니라 멜로디도 생각이 나는 곡들이 있었다.
문제가 이런 음반들을 발견하면 평소 나름 절제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하염없이 무너져버린다는 것. 주섬주섬 엘피를 뽑아놓고 나니 꽤 무겁다. 맞추어 주인장이 커피를 탁자 위에 놓고 간 모양이다.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지칠 시간이 되어서야 커피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꿀꺽꿀꺽 마셨다. 조금 더 힘을 내 전체를 둘러보고 엘피를 계산대로 가져갔다. 알고 보니 나의 존재를 주인장이 알고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엘피에만 정신이 팔려 눈에 빨갛게 엘피를 향하다가 시선이 오디오로 향했다. 간만에 보는 명기들이다. JBL K2 S5500이다. 우선 중앙을 가로지르는 혼 타입 개구부가 입을 쫘~악 벌리고 있다.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통해 소리를 내는 유닛으로 좁은 개구부를 통해 소리를 멀리 보낼 수 있으며 그만큼 직진성이 높아 시원시원하다.
우퍼는 무려 30cm 구경의 우퍼 두 개를 사용해 혼 유닛 상하로 배치했다. 이른바 가상 동축형 설계로서 트위터와 미드 우퍼를 동일한 축에 위치시키지 않고도 마치 동축 스피커 같은 시간 축 정확도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이 당시 이후 JBL은 원가 절감에 더해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색이 희석된 면이 많다. 이 외에 나도 정말 좋아해 몇 번을 사용하곤 했던 플리니우스 SA100 파워앰프 그리고 매킨토시 프리앰프가 눈에 띈다. 플리니우스 파워앰프는 정말 오랜만이다. 이 파워앰프는 생긴 건, 마치 미국산 같은 느낌이 있다. 마크 레빈슨이나 크렐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 뉴질랜드 브랜드다.
흥미로운 건 클래스 AB 증폭을 통해 묵직하고 펀치력 높은 사운드를 들을 수도 있고 클래스 A 증폭을 통해 힘을 약간 빼되 중, 고역에 하늘거리면서 투명한 질감 위주의 사운드를 즐길 수도 있다. 그렇다. 클래스 AB, A 선택이 가능한 파워앰프다.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클래스 A 증폭으로 한껏 음악적 열기를 끌어올려 듣던 때가 그립다.
사실 이 파워앰프를 보면 그 성능도 성능이지만 그걸 구하기 위해 애쓴 생각이 먼저 난다. 여유롭지 못한 생활에 수백만 원대 앰프를 백방으로 구했지만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매물을 발견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고 가지고 있던 다른 오디오는 물론 자주 듣지 않던 음반까지 희생시켜 저 파워앰프 한 대를 손에 넣었다.
육참골단(肉斬骨断)인가, 이대도강(李代桃僵)일까? 음반은 언제든 여유가 생기면 다시 구입할 수 있지만 그 파워앰프는 너무 귀해서 그때 아니면 구하지 못할 것만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간절함이었겠지. 한편, 턴테이블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언뜻 마이크로세이키 BL77 같다. 오일 댐퍼 달린 제짝 MA505 톤암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주인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피를 좋아하는, 아니 광의적으로는 아날로그 시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되고 아날로그 포맷에 기록된 컨텍스트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느껴지는 공감이란 것이 있다. 실제로 이 가게에 놓인 음반은 모두 아날로그 시절 음악들이다. 한편, 음악은 물론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포맷이 전성기였던 시절 혹은 CD라는 디지털 공룡이 그 자리를 찬탈했지만, 여전히 엘피가 사랑받던 과도기에 나온 오디오다.
오디오는 단순히 물건이 아니다. 그 시대의 시대상과 음악 감상 패턴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담는 그릇, 즉 포맷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첨단으로 진화한 지금의 오디오가 더 좋아졌을까? 물론 좋아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음악과 오디오에서 엔지니어링과 함께 반드시 다뤄야 할 건 음향 심리, 음악을 인지하고 어떻게 소화해 내면화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도 좋은 오디오 많이 나오지만 생각해 보면 20세기 말이 기술과 음악 모두 지금보단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아니, 아날로그 기술은 그 당시에 이미 절정을 찍고 내려오고 있었다.
20세기는 제작자들도 좀 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기인 듯하다. 기기에 따라서 음악도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아이돌 프로듀서 한 분은 현세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어떤 시선으로 편집해 내는가가 중요한 세대라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거대 자본이 들어오기 이전에 제법 순수했던 음악가가 품은 컨텍스트는 그 당시 하드웨어로 들을 때 극적인 시너지가 흘러나온다. 여러 생각에 빠져 음악을 좀 더 들었다. 주인장이 틀고 있는 음악이 궁금해서다. 여기서 정신 줄을 놓고 방금 입고된 엘피 몇 장을 또 주섬주섬 추가로 구입했다. 어떤 것은 과거에 국내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던 음반이었고 당시 CD 혹은 카세트테이프로 들었던 음반이다.
어떤 음반은 제대한 후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을 가지고 호기롭게 단골 레코드숍에 가서 수입 반으로 구매했던 앨범이다.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던 시절이다. 아날로그 시절과 디지털 시대가 혼재했던 10대와 20대 그 언저리의 추억까지 모두 소환되는 음악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음악은 음반에 담겨 하드웨어를 통해 다가왔고 그것은 다시 사람과 시간으로 연결됐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지금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엘피 비닐봉지 한 개 정도 채울 정도의 중고 엘피는 일시불로 구입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드는 한 가지 생각. 아마도 20대의 결핍이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열정에 불을 더 활활 지폈는지도 모른다. 너무 여유롭게 살아서 음반 따위는 너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면 혹은 군대에서 모진 훈련과 근무를 버티면서 음악을 상상만 하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결핍은 나의 힘이다.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