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로 사라지는 니콜라스 파티의 벽화, 그리고 나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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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유창선의 오십부터 예술
호암미술관 전시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Dust)>
호암미술관 전시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Dust)>
지금 호암미술관에서는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의 국내 첫 전시 <더스트 (Dust)>가 열리고 있다. ‘더스트’는 우리말로 ‘먼지’다. 어째서 전시의 이름이 먼지일까.
이번 전시의 규모는 상당히 크다. 작가의 기존 회화 및 조각 48점, 신작 회화 20점,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파스텔 벽화 5점이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먼지’라니. ‘먼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대단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파티는 이번 전시를 위해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을 참조하고 자신이 새로 그린 벽화들과 병치하며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대화를 펼치고 있다.
장생과 불멸의 염원을 담아내는 <십장생도 10곡병>, 김홍도의 <군선도>의 다양한 상징을 샘플링하여 상상의 팔선(八仙)을 형상화한 신작 초상 8점을 선보인다. 그리고 동굴과 백자 태호, 꽃, 버섯, 운석과 합체된 인간, 멸종된 공룡과 상상의 동물 용, 붉은 숲과 잿빛 구름 풍경 등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과 재현을 뒤섞고, 낭만주의적 숭고와 재난의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재현의 역사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먼지’라는 이름은 전시된 작품들의 의미가 가벼워서는 아니다. 전시가 끝나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된 파스텔 벽화 5점이 먼지가 돼 사라지기 때문이다. 파티가 그림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파스텔이다. 그는 "11년 전 파블로 피카소가 파스텔로 그린 초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흥미를 느꼈다"면서 "그다음 날 바로 파스텔을 구입해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내가 쓰는 유일한 재료"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파스텔은 지극히 연약하고 일시적인 재료다. 가루가 날리며 공기 중으로 쉽게 흩어진다. 그림에 사용되는 다른 재료들과는 달리 비교적 쉽게 지워진다. 파티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미리 와서 6주간의 작업을 거쳐 5점의 벽화를 그렸다. 호암미술관의 전시실에 거대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벽화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서 그린 대단한 작품들을 전시가 끝나면 먼지로 사라지게 만들겠다니, 다른 작가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번 전시의 주제가 맞물려 있다. 파티가 호암미술관 벽에 직접 그린 거대한 파스텔 벽화는 전시 동안에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운명을 갖고 만들어졌다. 이러한 파스텔의 존재론적 불안정성은 인간과 비인간, 문명과 자연의 지속과 소멸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파티는 아티스트 토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작품은 매우 천천히 소멸한다. 저 정원의 석조물도 끊임없이 마모되고 변한다. 수천 년 후에 석조물도 사라지고, 궁극적으로 이 땅도 사라질 것이다. 작품을 통해 시간의 개념을 성찰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모두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고, 나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고, 모든 것은 천천히 소멸되는 중이다. 돌로 만든 석조 건축물도, 우리가 서 있는 이 땅도 나중에 사라질 것이고, 전시가 끝나면 없어지는 벽화는 그런 시간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 (<VOGUE> 인터뷰)
그렇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것들은 장차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물며 수명이라는 삶의 유한성을 숙명으로 갖고 태어난 우리는 주어진 시간조차 짧다. 결국 나는 먼지로 돌아가게 갈 운명이다. 그러니 ‘더스트’는 벽화들의 주제가 아니라, 먼지로 돌아갈 나의 운명인 것이다. 그런데 다들 먼지로 돌아갈 사람들이 부딪히고 있는 세상은 너무도 살벌하고 부질없지 않은가. 이념과 정파와 종교에 따라 갈려서 서로 싸운다. 개인들은 탐욕과 증오와 질투에 갇혀서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파티의 벽화들은 그래도 아름답기라도 하지만, 먼지로 돌아갈 인간들이 벌이고 있는 생존 투쟁은 추하고 덧없다. 우리 또한 머지않아 세상에서 먼지처럼 사라질 존재라면 저렇게들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기억을 떠올려보니 청소년 시절에 따라부르던 캔자스(Kansas)의 "더스트 인 더 윈드 (Dust In The Wind)"라는 노래가 있었다. 인생의 덧없음과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표현한 곡이었다. 파티의 벽화와 다르지 않다.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이제, 집착하지 말아요/ 영원한 것은 하늘과 땅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도 언젠가는 사라져요/ 그리고 돈으로도 단 1분도 살 수 없어요/ 바람 속의 먼지/ 우리는 모두 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에요."
인생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삶 앞에 겸손하고, 삶의 소중함을 자각하며 의미 있게 살자는 얘기이다. 니콜라스 파티의 벽화들이 얼마 후 먼지로 사라진다 해도 지금 너무도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유창선 문화평론가
이번 전시의 규모는 상당히 크다. 작가의 기존 회화 및 조각 48점, 신작 회화 20점,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파스텔 벽화 5점이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먼지’라니. ‘먼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대단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파티는 이번 전시를 위해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을 참조하고 자신이 새로 그린 벽화들과 병치하며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대화를 펼치고 있다.
장생과 불멸의 염원을 담아내는 <십장생도 10곡병>, 김홍도의 <군선도>의 다양한 상징을 샘플링하여 상상의 팔선(八仙)을 형상화한 신작 초상 8점을 선보인다. 그리고 동굴과 백자 태호, 꽃, 버섯, 운석과 합체된 인간, 멸종된 공룡과 상상의 동물 용, 붉은 숲과 잿빛 구름 풍경 등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과 재현을 뒤섞고, 낭만주의적 숭고와 재난의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재현의 역사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먼지’라는 이름은 전시된 작품들의 의미가 가벼워서는 아니다. 전시가 끝나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된 파스텔 벽화 5점이 먼지가 돼 사라지기 때문이다. 파티가 그림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파스텔이다. 그는 "11년 전 파블로 피카소가 파스텔로 그린 초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흥미를 느꼈다"면서 "그다음 날 바로 파스텔을 구입해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내가 쓰는 유일한 재료"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파스텔은 지극히 연약하고 일시적인 재료다. 가루가 날리며 공기 중으로 쉽게 흩어진다. 그림에 사용되는 다른 재료들과는 달리 비교적 쉽게 지워진다. 파티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미리 와서 6주간의 작업을 거쳐 5점의 벽화를 그렸다. 호암미술관의 전시실에 거대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벽화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서 그린 대단한 작품들을 전시가 끝나면 먼지로 사라지게 만들겠다니, 다른 작가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번 전시의 주제가 맞물려 있다. 파티가 호암미술관 벽에 직접 그린 거대한 파스텔 벽화는 전시 동안에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운명을 갖고 만들어졌다. 이러한 파스텔의 존재론적 불안정성은 인간과 비인간, 문명과 자연의 지속과 소멸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파티는 아티스트 토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작품은 매우 천천히 소멸한다. 저 정원의 석조물도 끊임없이 마모되고 변한다. 수천 년 후에 석조물도 사라지고, 궁극적으로 이 땅도 사라질 것이다. 작품을 통해 시간의 개념을 성찰할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모두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고, 나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고, 모든 것은 천천히 소멸되는 중이다. 돌로 만든 석조 건축물도, 우리가 서 있는 이 땅도 나중에 사라질 것이고, 전시가 끝나면 없어지는 벽화는 그런 시간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 (<VOGUE> 인터뷰)
그렇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것들은 장차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물며 수명이라는 삶의 유한성을 숙명으로 갖고 태어난 우리는 주어진 시간조차 짧다. 결국 나는 먼지로 돌아가게 갈 운명이다. 그러니 ‘더스트’는 벽화들의 주제가 아니라, 먼지로 돌아갈 나의 운명인 것이다. 그런데 다들 먼지로 돌아갈 사람들이 부딪히고 있는 세상은 너무도 살벌하고 부질없지 않은가. 이념과 정파와 종교에 따라 갈려서 서로 싸운다. 개인들은 탐욕과 증오와 질투에 갇혀서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파티의 벽화들은 그래도 아름답기라도 하지만, 먼지로 돌아갈 인간들이 벌이고 있는 생존 투쟁은 추하고 덧없다. 우리 또한 머지않아 세상에서 먼지처럼 사라질 존재라면 저렇게들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기억을 떠올려보니 청소년 시절에 따라부르던 캔자스(Kansas)의 "더스트 인 더 윈드 (Dust In The Wind)"라는 노래가 있었다. 인생의 덧없음과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표현한 곡이었다. 파티의 벽화와 다르지 않다.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이제, 집착하지 말아요/ 영원한 것은 하늘과 땅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도 언젠가는 사라져요/ 그리고 돈으로도 단 1분도 살 수 없어요/ 바람 속의 먼지/ 우리는 모두 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에요."
인생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삶 앞에 겸손하고, 삶의 소중함을 자각하며 의미 있게 살자는 얘기이다. 니콜라스 파티의 벽화들이 얼마 후 먼지로 사라진다 해도 지금 너무도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유창선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