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안동집 손칼국시'.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 요리사:요리 계급 전쟁' 인기에 따라 많은 손님이 몰리고 있다. / 사진=성진우 기자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안동집 손칼국시'.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 요리사:요리 계급 전쟁' 인기에 따라 많은 손님이 몰리고 있다. / 사진=성진우 기자
"줄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이번에 처음 경동 시장에 온 만큼 즐길 수 있는 건 다 보려고요. '이모카세(이모와 오마카세의 합성어) 1호' 칼국수를 먹은 다음 시장 '핫플'이라는 스타벅스도 가 볼 생각입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신관 지하에 위치한 '안동집 손칼국수'(이하 안동집) 앞은 점심시간 전부터 식사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8일 남편과 가게를 찾은 30대 이모 씨는 "'흑백 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 요리사')의 광팬으로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1시에 가게 앞에 도착했다는 그는 30분 가까이 대기한 끝에 칼국수와 배추전을 맛 볼 수 있었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 요리사' 열풍에 따라 원래도 유명했던 안동집에 더 많은 손님이 몰리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이모카세 1호'란 별명으로 출연한 김미령 요리 연구가가 35년째 운영 중인 곳이기 때문이다. MZ(밀레니엄+Z) 세대 사이에서도 이 가게는 경동시장 명물로 새롭게 떠올랐다.

"이 허름한 상가에 젊은이들이 이렇게 몰릴 줄은 몰랐다"

'흑백 요리사'는 유명 셰프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실력자 셰프들이 각각 백수저와 흑수저로 나뉘어 요리 대결을 펼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17일 공개 이후 2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 TV 부문 1위에 오르는 등 연일 화제가 됐다.

'흑백 요리사'가 인기를 끌면서 각 셰프가 몸담은 레스토랑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전날 예약 애플리케이션(앱)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방송 이후 출연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검색량은 전주 대비 74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당 평균 예약률도 같은 기간 148% 급증했다.

안동집은 온라인 예약을 받지 않아 '오픈런'이 필수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안동집 손칼국시'의 대표 메뉴인 칼국수(왼쪽)와 주방 모습 / 사진=성진우 기자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안동집 손칼국시'의 대표 메뉴인 칼국수(왼쪽)와 주방 모습 / 사진=성진우 기자
안동집은 10시부터 영업하는데, 이날 오전 11시께 가게 앞엔 벌써 50여명의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손님들이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긴 바 형태의 테이블 앞에 마련된 주방에선 6명의 직원이 쉴 새 없이 배추전을 부치고 국수를 삶았다. 김 연구가의 남편이자 공동 대표인 이태호 씨는 "싱거우면 양념간장을 넣으셔야 한다"고 설명하며 자리에 앉은 손님을 일일이 응대했다.

이 대표는 "방송 이후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 평일 기준 칼국수가 매일 300그릇 이상 판매되고 있고, 주말 판매량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며 "원래 연세 있는 분들이 많이 찾았었는데 최근 손님의 절반 이상이 2030이라 세대교체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두 번째로 경동 시장을 방문했다는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흑백 요리사'를 보고 안동집 칼국수를 먹으러 왔다. 그런데 식당이 생각보다 허름한 상가에 있어 처음엔 놀랐다"며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서 먹으니 칼국수가 더 맛있고 정겹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홍콩 국적 유학생 전친이(28) 씨는 칼국수를 먹고 나와 가게 분위기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그는 "홍콩에서도 '흑백 요리사'가 유명해서 현지 친구들도 가게에 와보고 싶어 한다"며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안동집 손칼국시' 앞 길게 늘어선 줄 / 사진=성진우 기자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안동집 손칼국시' 앞 길게 늘어선 줄 / 사진=성진우 기자
김 연구가를 직접 보려던 손님들은 아쉬워 하기도 했다. 현재 김 연구가는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식 오마카세 전문점인 '즐거운 술상'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방송 인기에 따라 최근 개인 일정도 많아졌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가게를 찾아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

30대 직장인 마모 씨는 "이모카세 1호 님을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는데 오늘 가게에 안 계셔서 좀 아쉽다"며 "최근 유명세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칼국수가 입맛에 잘 맞아서 다음에 다시 올 생각이다. 그땐 사장님을 꼭 뵙고 싶다"고 말했다.

안동집이 MZ 세대 사이에서 유명세를 치르자, 원래도 '핫플레이스'로 통하던 스타벅스뿐 아니라 근처 식당들까지 들썩였다. 지하상가 내에 있는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크게 늘면서 덩달아 매출이 증대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업주들의 설명이다.
"'이모카세 1호' 사장님 감사합니다"…경동시장 '오픈런 대란' [현장+]
안동집 바로 옆에 있는 보리밥 식당 업주 안성례(68) 씨는 "젊은이들이 허름한 지하상가를 이렇게 많이 찾을 줄 누가 알았겠나. 대기 줄이 길다 보니 손님들이 일단 우리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다시 안동집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고마워서 매일 안동집 사장한테 고맙다고 인사할 정도"라고 말했다.

지하상가에서 상회를 운영하는 70대 김모 씨는 "식사 후 상가를 둘러보는 손님들이 오징어, 약과 등 간식거리를 많이 사 간다"며 "(방송이 인기를 타기 시작한) 2주 전부터 확실히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MZ 취향 저격' 경동 시장…"전통시장 부활의 롤모델"

젊은 고객 유입을 위해 노력해 온 경동시장은 최근 안동집이 부각되면서 MZ 세대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전통 시장으로 자리 잡았단 평가가 나온다.

경동시장은 지난 2022년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을 제안해 시장 내에 문을 열기도 했다. 해당 지점은 시장 내 오래된 극장을 개조한 독특한 인테리어로 MZ 세대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스타벅스 경동 1960점' /사진=성진우 기자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스타벅스 경동 1960점' /사진=성진우 기자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울 시내 전통시장들은 MZ 세대들의 '뉴트로'(신복고)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며 "특히 경동 시장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MZ 세대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전통시장 부활의 가장 좋은 롤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안동집처럼 MZ 세대들이 유입되는 가게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이들의 방문이 시장 상인들의 매출로 광범위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전략이 중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