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로 뭉친 30년, 진솔한 믿음의 하모니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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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 30주년 공연
클래식의 지배를 받아온 유럽에서 피어난 재즈의 정수
클래식의 지배를 받아온 유럽에서 피어난 재즈의 정수
나를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도 잘 이해해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속 모든 것이 터져 나오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가?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장장 30년을 함께 연주해온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가 결성 30주년 기념으로 지난 10월 3일 서울, 5일 대구를 찾았다.
양일의 공연에서 그들은 서로의 악기로 서로의 내밀한 감성을 끌어내고, 서로를 완성 시켜주는 폭발적인 하모니를 선보이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이어진 세월을 근거로 가장 솔직한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연주로 하나가 된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피아노의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베이스의 스와보미르 쿠르키에비츠, 퍼커션/드럼의 미하우 미시키에비츠 세 사람은 십 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간 함께 연주를 이어오고 있다. ‘심플 어쿠스틱 트리오’로 시작하여 현재의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로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역사적인 트리오 활동은, 폴란드 국내뿐 아니라 재즈의 성지 미국에서부터 해외 각국의 관심과 인정을 받아 온 바 있다.
클래식의 유구한 지배를 받아온 유럽에서,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기후와 분위기를 토대로 폴란드의 재즈는 그만의 색깔을 지닌 채 발전해왔다. 특히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음악은 폴란드 재즈의 정수를 깊이 담아낸 듯 보인다. 클래식의 섬세함, 유려함, 혹은 다소 계산적이고 철저한 면모가 돋보이는 동시에 폴란드의 칙칙하고 흐린 날씨가 주는 멜랑꼴리함이 더해졌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마주한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음악은, 단순히 ‘폴란드의 재즈’로 국한 시켜 보기에 그 지경은 이미 국가를 넘어선 것 같았다. 어떤 국가와 시대라는 외부적 환경을 담아내고 소화하는 과정을 지나 그들의 내면에 새겨진 것을 표현하는,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재즈’를 연주해냈기 때문이다. 피아노에 똑 떨어진 하나의 음률은 베이스의 묵직한 선을 타고 드럼의 타악에서 터지듯이 완성되었다. 멜로디, 리듬, 템포, 곡의 해석 등, 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순간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하나가 되는 과정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어졌다.
피아노가 깊이 몰입하는 순간에 들어서서 격정적으로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베이스와 드럼은 곧바로 이를 뒷받쳐주기도 하고, 드럼이 실험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피아노와 베이스는 느긋하게 이를 기다려주었다. 각자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연주, 그리고 이를 믿고 존중하며 화합하는 팀워크는 그들 스스로와 그곳의 관중 모두를 아득히 먼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만의 재즈 세계’로 당도하게끔 이끌었다. 한국에서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연주 진행 방식, 그리고 생경한 자작곡 위주의 셋 리스트에 혹자는 다소 난해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엇갈리듯 배치되는 음들, 낯선 템포 속에서도 공연장 대다수의 관객이 그들의 연주에 깊이 감회 될 수 있었던 것은 진솔함 덕분일 것이다.
두 눈을 반짝이며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의 진심은 가벼울 수가 없다. 어렵사리 다가오는 이야기일지언정 그 진지함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연주 속에 담긴 그들만의 언어와 대화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만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다는 용기와 단단한 진심은 감동으로 전해졌고 긴 여운이 남은 박수갈채로 많은 이들이 앵콜을 청하며 무대의 열기는 차가운 가을밤을 훈훈히 데웠다. 30년간의 믿음이 만들어준 누구보다도 솔직한 연주, 그리고 누구보다도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다운 연주는 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앞으로의 10년, 20년 뒤 또 그들이 만들어낼 그들만의 재즈 세계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민예원(스튜디오 파도나무) 재즈칼럼니스트
양일의 공연에서 그들은 서로의 악기로 서로의 내밀한 감성을 끌어내고, 서로를 완성 시켜주는 폭발적인 하모니를 선보이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이어진 세월을 근거로 가장 솔직한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연주로 하나가 된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피아노의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베이스의 스와보미르 쿠르키에비츠, 퍼커션/드럼의 미하우 미시키에비츠 세 사람은 십 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간 함께 연주를 이어오고 있다. ‘심플 어쿠스틱 트리오’로 시작하여 현재의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로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역사적인 트리오 활동은, 폴란드 국내뿐 아니라 재즈의 성지 미국에서부터 해외 각국의 관심과 인정을 받아 온 바 있다.
클래식의 유구한 지배를 받아온 유럽에서,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기후와 분위기를 토대로 폴란드의 재즈는 그만의 색깔을 지닌 채 발전해왔다. 특히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음악은 폴란드 재즈의 정수를 깊이 담아낸 듯 보인다. 클래식의 섬세함, 유려함, 혹은 다소 계산적이고 철저한 면모가 돋보이는 동시에 폴란드의 칙칙하고 흐린 날씨가 주는 멜랑꼴리함이 더해졌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마주한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음악은, 단순히 ‘폴란드의 재즈’로 국한 시켜 보기에 그 지경은 이미 국가를 넘어선 것 같았다. 어떤 국가와 시대라는 외부적 환경을 담아내고 소화하는 과정을 지나 그들의 내면에 새겨진 것을 표현하는,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의 재즈’를 연주해냈기 때문이다. 피아노에 똑 떨어진 하나의 음률은 베이스의 묵직한 선을 타고 드럼의 타악에서 터지듯이 완성되었다. 멜로디, 리듬, 템포, 곡의 해석 등, 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순간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하나가 되는 과정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어졌다.
피아노가 깊이 몰입하는 순간에 들어서서 격정적으로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베이스와 드럼은 곧바로 이를 뒷받쳐주기도 하고, 드럼이 실험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피아노와 베이스는 느긋하게 이를 기다려주었다. 각자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연주, 그리고 이를 믿고 존중하며 화합하는 팀워크는 그들 스스로와 그곳의 관중 모두를 아득히 먼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만의 재즈 세계’로 당도하게끔 이끌었다. 한국에서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연주 진행 방식, 그리고 생경한 자작곡 위주의 셋 리스트에 혹자는 다소 난해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엇갈리듯 배치되는 음들, 낯선 템포 속에서도 공연장 대다수의 관객이 그들의 연주에 깊이 감회 될 수 있었던 것은 진솔함 덕분일 것이다.
두 눈을 반짝이며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의 진심은 가벼울 수가 없다. 어렵사리 다가오는 이야기일지언정 그 진지함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연주 속에 담긴 그들만의 언어와 대화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만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다는 용기와 단단한 진심은 감동으로 전해졌고 긴 여운이 남은 박수갈채로 많은 이들이 앵콜을 청하며 무대의 열기는 차가운 가을밤을 훈훈히 데웠다. 30년간의 믿음이 만들어준 누구보다도 솔직한 연주, 그리고 누구보다도 마르친 바실레프스키 트리오다운 연주는 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앞으로의 10년, 20년 뒤 또 그들이 만들어낼 그들만의 재즈 세계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민예원(스튜디오 파도나무) 재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