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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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 씨(24)는 영어를 배우면서 돈도 모으겠다는 꿈을 안고 올초 호주로 ‘워킹홀리데이’(워홀)를 떠났다. 장밋빛 꿈이 깨지는 데는 5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바리스타로 근무한 박씨는 “세금을 제하고 매달 3200호주달러(약 290만원)를 받았는데, 집세와 생활비 등을 내면 수중에 남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조기 귀국을 택했다.

청년들에게 해외 취업과 어학 공부를 병행할 기회로 여겨지는 워킹홀리데이의 인기가 급속도로 식고 있다. 해외 체류 경험이 취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데다 현지 물가 급등으로 인한 생활고 등 예전과 상황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각종 범죄에 노출된 사건이 알려지면서 계획한 워홀을 포기하거나, 중도 귀국을 택한 이도 늘어나는 추세다.

15년 새 워홀 비자 발급 ‘반토막’

"영어 배우면서 1시간 2만원 번다더니"…호주 간 여대생 눈물
8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워홀 비자 발급은 3만1451건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3만8245건) 대비 17.7%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워홀 비자 발급은 2009년 5만2968건으로 고점을 찍은 뒤 점차 줄고 있다.

워홀은 해외 국가에 체류하는 동안 현지에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임시 취업할 수 있는 관광취업비자 제도다. 1995년 호주와 처음으로 협정을 맺었고 지금은 영국 일본 등 25개국으로 협정 국가가 늘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지원 자격이 18~30세가 대부분이라 국내 대학생과 취업 전 대졸자들이 경험 삼아 주로 지원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워홀 비자가 줄어든 건 국내 취업시장에서 워홀의 메리트가 사라진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유학원 관계자는 “과거엔 워홀 자체를 기회로 여기는 학생이 많았는데, 요즘은 상담하러 왔음에도 ‘공백기가 생기면 취업 때 발목이 잡히진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 워홀러의 천국’으로 불리던 호주로 떠나는 이들도 크게 줄었다. 2009년에는 3만9505건의 호주 워홀 비자가 발급됐는데 지난해엔 1만4680건으로 줄었다. 이 기간 호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14.3달러에서 23달러로 1.6배로 증가했는데, 한국 최저임금은 4000원에서 9860원으로 2배 넘게 뛰었다.

호주에 체류 중인 김모 씨(28)는 “호주 최저 시급은 한화로 2만원이 넘지만, 식비와 렌트비 등 기본 생활비도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높아 체감 벌이는 비슷하다”며 “중도에 귀국하는 워홀러도 여럿 봤다”고 했다.

범죄 표적 된 워홀러들 ‘이중고’

체류 중인 워홀러들이 각종 범죄에 노출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워홀러 중 313명이 사기, 폭행 상해, 절도 등 범죄 피해를 봤다. 지난 8월 호주에선 한국계 초밥체인 스시베이가 조직적으로 한국 워홀러들의 임금을 착취한 혐의로 현지 법원에서 138억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지난해 영국 워홀 도중 숙소 임대 사기를 당했다는 박모 씨(27)는 “3개월 치 임대료와 보증금을 선납했다가 2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사기꾼이 현지 은행 서류를 위조했는데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했다.

정부는 2021년 영사조력법을 제정해 워홀러 등의 현지 체류 국민 보호책을 강화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워홀 게시판에는 ‘사기 피해를 봐 영사관 도움을 요청했더니 통역사 명단을 주더라’는 등 국내 재외국민 보호 제도를 성토하는 게시물이 적지 않다. 한 의원은 “외교부가 워홀 참가자의 범죄 피해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현지 입국 및 취업 후에도 참가자들을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