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의원님들의 거드름
한 줄로 쭉 늘어서 두 손을 가지런히 앞쪽에 모으거나 열중쉬어 한 자세. 영락없이 선생님 앞에 꾸지람을 듣는 학생, 재판받는 죄수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제 방송통신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인 17명을 한 줄로 세웠다. 정 의원은 방통위에 파견됐다가 돌아갔거나 파견된 검찰, 경찰, 감사원 소속 공무원인 이들에게 ‘정권 도구’라고 비판했다. 따질 일이 있으면 앉혀 놓고 해도 될 일인데 이렇게 벌주듯이 한 것은 ‘완장 본능’의 전형이다.

정책 감사라는 국감의 본질과 거리가 먼 사안으로 공무원과 민간인에게 동행명령장을 마구 발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략적 목적으로 강제 소환된 증인들은 꼼짝없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심문을 당할 것이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 국감에서 중고차 허위 매물 거래 실태를 지적한다는 명분으로 당사자 동의 없이 멋대로 박상우 장관의 관용차를 당근마켓에 매물로 등록했다고 밝혀 고발당할 판이다.

의원들의 안하무인 행태는 이뿐만 아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해병대원 특검 청문회에서 답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을 “반성하고 들어오라”며 10분씩 퇴장시켰다. “어디서 그런 버릇이냐”며 훈계하고,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라고 조롱했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청문회 당시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게 “몇 살이냐” “뇌 구조가 이상하다”고 했다.

지난 6월 방통위를 항의 방문한 김현 민주당 의원은 진입을 거부당하자 창구 직원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이 시간 이후부터 한마디만 거짓말하면…”이라고 언성을 높였고, 이 직원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22대 국회 출범 이후 4개월 동안 벌어진 ‘의원 갑질’의 일부 사례다. “예, 의원님이라고 대답하세요” 정도는 약과. 과거 의원들의 거드름 사례를 다 소개하려면 두꺼운 책자를 만들어도 모자랄 것이다. 망신 주기와 호통이 본분인 줄 아는 의원들 때문에 올해 국감 수준도 벌써부터 바닥이다.

홍영식 한국경제매거진 전문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