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이 9조1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274.5% 증가한 것이지만,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12.8%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시장 전망치(10조7719억원)를 15.5%나 밑돌았다.

삼성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실적 발표 후 이례적으로 고객과 투자자,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냈다. 삼성이 우리 경제의 상징적 존재임을 감안할 때 사실상 국민을 상대로 ‘반성문’을 쓴 격이다. 전 부회장은 “많은 분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신다”며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한 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을 당면 최대 과제로 꼽았다. 그는 “완벽한 품질 경쟁력만이 삼성이 재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자 흠잡을 데 없는 표현이지만, 삼성이 처한 시장 현실과 위기의 배경을 진단해 보면 말 몇 마디로 시장과 국민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삼성 위기론의 일차적 원인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엔비디아 납품이 하염없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반도체 CEO가 전격 경질된 지 5개월이 지났는데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목표주가를 반토막으로 내려 잡는 증권사가 나올 정도로 시장 신뢰를 잃고 있다.

삼성의 HBM 실기는 제너럴모터스(GM), 인텔, 보잉 등 기술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콩 세는 사람들)’ 현상과 닮은 것이어서 더 불안하다. 단기적 수익에만 매몰된 나머지 미래 기술 역량 축적에 소홀히 한 탓에 본원적 경쟁력을 잃고 추락한 기업들이다.

위로는 HBM 기술에 막히고 아래로는 중국 기업의 맹추격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의 실적 부진에는 PC용 D램 등 범용 제품의 판매 부진 요인도 있는데, 중국 CXMT(창신메모리) 등에 중국 수출 물량을 잠식당한 것이 큰 이유다. 낸드 분야에서는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삼성과의 기술 격차를 바짝 좁힌 상태다. 화불단행 격으로 사상 첫 파업까지 일어나는 등 조직문화도 예전 같지 않다. 국내 증시의 밸류업은 대장주 삼성의 재도약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시장은 CEO의 사과를 넘어 처절한 혁신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