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이 세계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급부상했다. 시가총액 1위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를 발행하는 테더사의 미국 국채 보유량이 독일을 넘어 한국과 맞먹는 수준까지 불어나면서다. 스테이블 코인의 영향력이 암호화폐시장과 외환시장을 넘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웬만한 국가 넘어섰다"…7조 넘게 벌어들인 '큰손'의 정체

존재감 커지는 스테이블 코인

테더사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52억달러(약 7조원)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 최대 증권사 찰스슈와브(27억달러)와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31억달러)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미국 4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66억달러)과 비교해도 소폭 뒤지는 정도다.

테더사는 1위 스테이블 코인 테더를 발행한다. 테더 시총은 1197억달러(약 161조원)에 달한다. 전체 암호화폐 가운데 비트코인, 이더리움에 이어 시총 3위다. 테더는 대표적인 법정화폐(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 고객이 테더사에 1달러를 맡기면 테더사는 고객에게 1테더를 지급한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의 수익 모델은 단순하다. 테더사는 고객이 맡긴 예치금을 운용해 투자 수익을 낸다. 주로 미 국채, 금, 비트코인 등 안정성이 높거나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에 투자한다. 고객이 달러를 인출하려고 할 때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다.

테더사의 준비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1184억달러(약 160조원)로, 이 가운데 대부분을 미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테더사의 미 국채 보유량은 976억달러에 육박한다. 독일(880억달러), 멕시코(958억달러) 등을 웃돌고 한국(1167억달러)에 조금 못 미친다. 이런 이유로 테더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절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예컨대 ‘코인런’이 발생하면 테더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 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하고, 이는 금융시장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본·외환시장까지 영향권

테더사가 이처럼 대규모 자산을 보유하게 된 것은 테더 수요가 그만큼 급증했기 때문이다. 테더 시총은 2020년 초 43억달러에서 이달 7일 1197억달러로 4년여 만에 28배로 늘었다. 비트코인 등 일반적인 암호화폐는 투자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오르면 시총이 커지지만,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은 ‘1달러’ 등으로 고정돼 있다. 테더 시총이 늘어나는 것은 발행량 증가, 다시 말해 수요 증가와 직결돼 있다는 뜻이다.

가격이 크게 오를 리 없는 테더의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스테이블 코인이 다른 암호화폐에 투자하기 위한 기축통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등 선진국에서도 무역 거래 결제 등에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테더 등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의 몸집이 커질수록 미국이 수혜를 누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일본 등이 미 국채 보유량을 줄이는 가운데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새로운 수요처로 떠올라서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달러 수요가 늘어나 달러의 지배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명성·안정성 논란은 숙제

테더사와 테더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테더사의 투명성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테더사는 매 분기 자산 내역을 보고서로 공개하는데, 회계감사가 아니라 인증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말 스테이블 코인 안정성 평가에서 테더에 두 번째로 낮은 점수인 4점을 부여했다. 테더사의 위험자산 비중이 높고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유럽에서는 가상자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테더 상장폐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서형교/조미현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