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성지' 테이트모던에 내장을 널어놓은 최연소 한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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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테이트모던 '터바인 홀' 전시한 이미래
약 998평 채운 ‘오픈 운즈’(열린 상처들)
약 998평 채운 ‘오픈 운즈’(열린 상처들)
지난해 관객 수 474만명으로 전 세계 현대미술관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한 ‘현대미술의 성지’, 영국의 테이트 모던. 이 거대한 미술관에 들어선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마주하는 전시장이 있다. 미술관을 상징하는 거대한 전시 공간 ‘터바인 홀’이다. 테이트 모던은 개관 이래 매년 현대미술 작가를 딱 한 명씩 선정해 이곳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어 왔다. 루이스 부르주아, 아이웨이웨이 등 수많은 거장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예술가들이 꼽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크다는 것’. 높이는 35m에 넓이가 3300㎡(약 998평)에 달하는 이곳은 어떤 상상이든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드넓은 무대지만, 웬만한 작가의 작품은 설치해도 존재감이 희미해질 정도로 막막하리만치 광대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8일 찾은 터바인 홀에서 올해 전시 주인공이자 역대 최연소 작가인 이미래(36)의 대형 설치 작품 ‘오픈 운즈’(열린 상처들)는 공간에 지지 않고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춰세우고 있었다. 작품이 주는 인상은 기괴하다. 터바인 홀 공중에는 촉수 같은 실리콘 줄이 감겨 있는 7m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끊임없이 돌아가고, 여기에서 피나 체액처럼 보이는 끈적한 액체들이 끊임없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천장에 달린 쇠사슬에는 동물의 가죽이나 넝마처럼 보이는 천 조각들이 걸려 있다. 2022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 지난해 미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뉴뮤지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과 유사한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미래는 몸 밖으로 삐져나온 내장을 닮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못생기고 불쾌하지만 가여운 것들이 주는 독특한 매력, 생명과 죽음의 순환, 상실의 슬픔, 몸의 성질 등 다양한 것들을 표현해왔다. 이 같은 ‘육체의 비참함과 연약함’은 예수가 고문을 받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중세의 종교 화가부터 인간의 몸을 정육점에 매달린 고기처럼 묘사한 프랜시스 베이컨까지, 종교적 교훈이나 인생의 덧없음 등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주제 중 하나다. 터바인홀에 설치한 이번 작품을 통해 이미래가 전하려는 건 ‘산업 생산을 위해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진 개인들의 상처’. 테이트모던 건물이 한때 런던에 공급하는 전기를 생산했던 화력발전소였고, 터바인홀은 발전소 터빈이 있었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품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이미래는 화력발전소에서 실제로 썼던 크레인과 쇠사슬을 사용해 조각들을 천장에 매달았다. 이처럼 뭔가를 천장에 매다는 건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좁은 탈의실 공간에서 자기 짐을 보관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터빈이 새로운 조각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미래가 붉은 체리즙과 점성을 높여주는 메틸셀룰로오스 등을 섞어 만들어낸 특수한 액체는 터빈에 연결된 호스에서 떨어져 천 조각을 거쳐 바닥에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액체의 일부는 천 조각에 붙어 굳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천장에 걸려 있는 조각들처럼 가죽을 연상시키는 상태로 굳는다. 이미래는 “4개월 가량 전시하는 동안 100개였던 조각이 150개까지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테이트 모던은 이미래의 작품에 대해 “경외감과 혐오감에서 연민, 두려움,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순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언론은 “속이 뒤집힐 것 같지만 미학적으로는 성공에 가깝다”(타임즈), “어둡고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강력하다”(텔레그래프) 등 대체로 전시를 호평했다.
이미래는 “아름답다는 느낌과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둘 다 심장을 건드리는 감정이라서 그런 것 같다”며 “상처와 함께 사는 것, 그리고 그 상처의 아픔과 역경, 어려움을 잊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작품에 담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6일까지. 런던=성수영 기자
예술가들이 꼽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크다는 것’. 높이는 35m에 넓이가 3300㎡(약 998평)에 달하는 이곳은 어떤 상상이든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드넓은 무대지만, 웬만한 작가의 작품은 설치해도 존재감이 희미해질 정도로 막막하리만치 광대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8일 찾은 터바인 홀에서 올해 전시 주인공이자 역대 최연소 작가인 이미래(36)의 대형 설치 작품 ‘오픈 운즈’(열린 상처들)는 공간에 지지 않고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춰세우고 있었다. 작품이 주는 인상은 기괴하다. 터바인 홀 공중에는 촉수 같은 실리콘 줄이 감겨 있는 7m 길이의 터빈이 매달려 끊임없이 돌아가고, 여기에서 피나 체액처럼 보이는 끈적한 액체들이 끊임없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천장에 달린 쇠사슬에는 동물의 가죽이나 넝마처럼 보이는 천 조각들이 걸려 있다. 2022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 지난해 미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뉴뮤지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과 유사한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미래는 몸 밖으로 삐져나온 내장을 닮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못생기고 불쾌하지만 가여운 것들이 주는 독특한 매력, 생명과 죽음의 순환, 상실의 슬픔, 몸의 성질 등 다양한 것들을 표현해왔다. 이 같은 ‘육체의 비참함과 연약함’은 예수가 고문을 받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중세의 종교 화가부터 인간의 몸을 정육점에 매달린 고기처럼 묘사한 프랜시스 베이컨까지, 종교적 교훈이나 인생의 덧없음 등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주제 중 하나다. 터바인홀에 설치한 이번 작품을 통해 이미래가 전하려는 건 ‘산업 생산을 위해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진 개인들의 상처’. 테이트모던 건물이 한때 런던에 공급하는 전기를 생산했던 화력발전소였고, 터바인홀은 발전소 터빈이 있었던 공간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품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이미래는 화력발전소에서 실제로 썼던 크레인과 쇠사슬을 사용해 조각들을 천장에 매달았다. 이처럼 뭔가를 천장에 매다는 건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좁은 탈의실 공간에서 자기 짐을 보관하던 방식이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터빈이 새로운 조각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미래가 붉은 체리즙과 점성을 높여주는 메틸셀룰로오스 등을 섞어 만들어낸 특수한 액체는 터빈에 연결된 호스에서 떨어져 천 조각을 거쳐 바닥에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액체의 일부는 천 조각에 붙어 굳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천장에 걸려 있는 조각들처럼 가죽을 연상시키는 상태로 굳는다. 이미래는 “4개월 가량 전시하는 동안 100개였던 조각이 150개까지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테이트 모던은 이미래의 작품에 대해 “경외감과 혐오감에서 연민, 두려움,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순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언론은 “속이 뒤집힐 것 같지만 미학적으로는 성공에 가깝다”(타임즈), “어둡고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강력하다”(텔레그래프) 등 대체로 전시를 호평했다.
이미래는 “아름답다는 느낌과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둘 다 심장을 건드리는 감정이라서 그런 것 같다”며 “상처와 함께 사는 것, 그리고 그 상처의 아픔과 역경, 어려움을 잊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작품에 담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6일까지. 런던=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