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신탁 전세사기 주택 경·공매와 명도소송을 유예한 금융회사 직원을 제재하지 않기로 했다. 그간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9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이 같은 내용의 비조치의견서를 은행 등 금융사에 발급했다. 비조치의견서 발급은 현행 규정으로는 제재 대상이지만 금융당국이 여러 사정을 감안해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는 의미다.

신탁 전세사기는 사기범이 신탁회사에 맡긴 매물을 자신의 주택인 것처럼 속여 임차인의 보증금을 빼가는 수법을 말한다. 신탁계약을 맺은 건물은 소유권이 신탁회사에 넘어가 있기 때문에 세입자를 받으려면 신탁사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기범이 신탁사의 동의 없이 임차인을 들였기 때문에 주택을 둘러싼 권리관계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전세사기 주택의 경우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매입 대상이었지만 신탁 주택은 제외된 이유다. 신탁사 또는 금융사가 퇴거를 요청할 경우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집에서 나와야 했다.

지난 8월 전세사기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신탁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할 길이 열렸다. 이 법은 신탁 전세사기 주택도 LH가 매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LH가 해당 주택을 매수하면 임차인은 10년간 공공임대주택 형식으로 무상 거주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법 시행 후 무상임대까지 장기간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비조치의견서를 발급해 시간을 벌어주기로 했다. 금융사는 신탁사의 ‘우선수익권증서’를 취급한 대출의 채무자(집주인)가 연체할 경우 절차에 따라 경·공매 또는 명도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해당 주택에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할 경우 이를 한시적으로 유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전세사기 관련 피해 임차인이 다수 발생해 피해자의 긴급 주거 안정 및 피해자 구제를 최우선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 정책에 금융사가 협조하기 위해 담보권 실행을 유예하면 이를 충분히 감안하기로 했다”고 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