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굴리면 일어날 일들
근로자 퇴직연금을 국민연금공단에 맡기자는 여야 정치권의 발상은 수익률 격차에서 비롯됐다. 국민연금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5.7%. 같은 기간 퇴직연금은 2.1%에 불과하다. 가입자들의 돈이 대부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탓이다. 이 돈을 국민연금으로 옮기기만 하면 2%짜리 수익률이 6%로 오른다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계산법이다.

그런 둔갑술은 가능하지 않다. 2%와 6% 사이에는 엄청난 위험과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더 많이 벌고 싶으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9.1%의 기록적 수익률을 올린 캐나다 연금(CPP)은 전체 자산의 80%를 주식과 대체자산으로 채웠다. 완전한 고위험 투자다. 개인으로 치면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의 80%를 주식에 ‘몰빵’한 셈이다. 비록 CPP는 대단한 성과를 올렸지만 높은 수익률이 높은 손실률과 동행하는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열 번의 투자를 성공시켜도 단 한 번의 방향 착오로 원금을 잃는 것이 투자의 세계다.

더욱이 국민연금의 현재 수익률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난 10년간 큰 수익을 안겨준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가도가 향후에도 지속될지 의문이다. 현행 운용 방식을 퇴직연금에 그대로 대입할 수도 없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가입자의 법적 권리, 연금 수령 방식, 장단기 운용 방식 모두 다르다. 국민연금 수령은 법정 연령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운용 성과와 관계없이 당초 정부가 약정한 금액이 보장된다. 투자금 회수 기간도 초장기다. 국채 30년짜리를 사서 만기 때까지 들고 갈 수도 있다. 퇴직연금은 연금 수령 시점과 인출 방식 모두 은퇴 근로자 개인이 결정한다. 뒷세대가 앞세대 연금을 책임지는 구조도 아니다. 플러스든, 마이너스든 당장의 운용 결과를 100% 받아들여야 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공적연금의 민간 시장 압살이다. 개인연금이 170조원에 머무는 상황에서 국민연금(1000조원), 퇴직연금(400조원)을 합치면 사실상 연금의 국유화나 다름없다. 2040년이면 양대 기금 규모가 무려 3500조원으로 불어난다. ‘연못 속의 고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연못 물을 바닥내고 그대로 주저앉는 괴물이 될 판이다. 상장사들의 자율과 혁신은 거대 주주권 행사 앞에서 그야말로 질식하고 말 것이다. 어떤 투자계획도 연금의 승인 없이는 실행 불가다. 경제는 그대로 권력자의 손아귀에 떨어진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언젠가 바닥날 운명이다. 고갈 연금과 비고갈 연금을 한 기관이 운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방화벽 운운하지만 다급하면 국가 보증을 걸고 돌려막기도 불사할 터다.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도록 하거나 부분 기금화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관치에 길들여진 한국 금융소비자의 생리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한국은 금융투자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나라다. 엉터리 사이비 펀드에 돈을 넣은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구제해 준다. 하물며 정부 권유로 국민연금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완전히 상전이다. 혹여 원금을 날리는 날이라도 오면 누구라도 머리띠를 매고 길거리로 쏟아져나올 것이다. 정치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국가 책임을 강조하고 셈 빠른 관료들은 가입자들의 억울한 사정에 등급을 매겨 보상금을 산정할 것이다. 검찰과 금융감독원이라고 가만있겠나. 압수수색과 매니저 소환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필자의 상상과 걱정이 과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사적 재산에 공적연금을 끌어들이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구조를 뜯어고쳐야 할 개혁 대상이지만, 퇴직연금은 은행 이자에 묶여 있는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해줘야 할 대상이다. 자산 운용과 배분에 대한 규제를 풀고 민간 금융을 활성화하는 것이 정답이다. 더욱이 IPS(자산운용 지침) 디폴트옵션 등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실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민간의 실력이 국민연금에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공적 개입은 시장의 실패를 확인한 뒤에야 시도할 사안이다. 지금은 시장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