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가치와 1 대 1로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이 각국의 통화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각국 통화처럼 쓰이면서 전 세계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통화 대체)’이 심화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미 일부 개발도상국에선 법정화폐보다 스테이블 코인을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는 ‘발등의 불’이 됐다는 지적이다.
"전세계 통화주권 위협받나"…'발등의 불' 떨어진 이유

통화 대체 가속화하나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 위협적인 것은 자국 통화 수요가 감소하는 데 따른 통화 대체 부작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자국 통화 수요가 줄어들면 통화 정책의 통제력이 약화한다. 중앙은행이 금리나 통화량 등을 조절해 경제를 안정시키려 해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기존 금융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자본의 국경 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본 유출입을 통제하기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통화 대체는 정부 정책 실패나 내전 등 정치적 불안정, 금융·외환 위기 등 경제 위기 상황에서 초인플레이션과 함께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짐바브웨, 베네수엘라처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달러라이제이션이 발생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도 저금리를 고수한 튀르키예,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달러 환전까지 막은 아르헨티나 등에서 스테이블 코인 수요가 급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진국에서도 ‘촉각’

스테이블 코인은 거래가 빠르고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에 통화 대체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차가 복잡하고 고비용인 기존 금융 시스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어서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스테이블 코인을 사실상 화폐로 보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해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해 “스테이블 코인을 화폐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며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 연방정부의 강력한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의회는 스테이블 관련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22년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 코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주체를 면허가 있는 은행, 송금 서비스 제공자 및 신탁회사 등으로 제한했다. 영국은행(BOE)은 국제결제은행(BIS)과 함께 스테이블 코인의 자산 대비 부채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나서는 등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암호자산시장법률(MiCA)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원화 코인 실험도 고려해야”

한국은행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개발로 스테이블 코인에 대응하고 있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다. 법정통화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법정통화 자체의 위상을 갖는다.

한은은 이르면 올해 말 10만여 명이 하나로마트, 편의점 등에서 자신의 예금을 토큰 형태의 디지털화폐로 전환해 사용하는 ‘CBDC 활용성 테스트’에 나설 예정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12월 “스테이블 코인이 확산되면 화폐 단일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고, 화폐 발행 주조차익과 통화정책 수행 방식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CBDC 도입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CBDC와 함께 원화 표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실험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달러라이제이션

dollarization. 자국 법정화폐 대신 미국 달러를 통화로 쓰는 현상.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할 때 주로 나타난다.

조미현/서형교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