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우를 쪼는 장면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참 좋았어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사람]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우리의 배우, 박병은
③ [한국영화의 오늘: 스페셜 프리미어] 섹션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박병은 배우'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우리의 배우, 박병은
③ [한국영화의 오늘: 스페셜 프리미어] 섹션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박병은 배우'
박병은 배우의 옆모습을 좋아한다. 그의 옆모습은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속 킴 노박 (Kim Novak)의 프로필 쇼트(옆 모습 클로즈업) 만큼이나 강렬하고 신비롭다. 2002년에 데뷔 (영화 기준) 한 그는 22년 동안 참 많은, 그리고 그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를 거쳤다.
조선인 300명을 사살한 일본인 장교에서부터 백화점 식품관 팀장, 그리고 조선시대의 군관부터 지능팀 형사까지 박병은 배우는 그의 프로필 쇼트처럼 아이코닉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들로 한국영화사의 페이지들을 장식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최근작,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김민수)가 [한국영화의 오늘: 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으로 초청, 상영되었다. 부국제에 참여 중인 박병은 배우와 그가 거쳐온 영화들, 그리고 이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오랜만에 부산국제영화제의 방문으로 알고 있다. 오랜만에 영화제에 참여하는 소감은?
"그렇다. 아마 한 10년 전 이었던 것 같다. 어제 개막식에 참여하면서 다른 배우들이 레드 카펫으로 들어오는 것도 봤는데 괜히 울컥하더라. 그래, “내가 영화인이었지, 배우였지” 하는 실감이 갑자기 들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요즘 산업이 전반적으로 수축한 상태라 더더욱 그런 울컥함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우정 출연과 단역을 포함해 총 39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필모그래피 상으로는 2002년 윤제균 감독의 <색즉시공>이 데뷔작인데, 그전에도 영화와 연을 맺고 있었는지.
"사실 그 이전부터 영화 아카데미나 학교 졸업작품 등에 정말 많이 출연했다. 그때는 씨네21이나 필름 2.0 뒤에 공고를 통해 배우를 모집하거나 했었다. 많은 프로젝트를 했고 나름 명성을 얻어서 나를 차지하기 위한(박병은 배우를 보내 달라는) 각축전이 일어났을 때다 (웃음). 기록상으로는 2002년 데뷔로 나와 있지만 그 전부터 이미 그런 학교 프로젝트를 많이 거쳤다."
▷ 2000년대 초반의 영화 현장과 2020년대 이후 현장은 어떤 것이 가장 달라졌나.
"일단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필름 시대의 촬영장은 정말 엄혹했다 (웃음). NG를 내도, 다시 하겠다고 해도, 필름이 비싸니 모두가 눈치를 봐야 했다. 나름 잘나가는 선배들은 필름을 자비로 사 올 테니 다시 하겠다는 말을 하는 그런 시대였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한 것은 영화 현장에서 느끼기엔 가장 큰 격변이 아닌가 싶다."
▷ 독립영화, <지구에서 사는 법> (2007)이라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자신의 연기를 본 느낌은 어땠는지.
"홍대 상상마당에서 개봉 이후, 상영 기간에 봤던 기억이 난다. 나를 제외하고 두 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던 것 같다 (웃음). 그때 첫 느낌은 현장에서는 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크린으로 보니 실상 그렇게 나오지 않은 부분들, 그런 걸 처음으로 목도했다. 현장과 나중에 보여지는 것들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 개인적으로는 박병은 배우가 인간적인 소시민으로 등장할 때가 가장 좋았다. <시민 덕희>의 박형사가 그랬고 <인간 실격>의 정수가 그랬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어떤 것인가.
"나 역시 <인간 실격>의 ‘정수’역을 좋아한다. 존경하는 전도연 배우와 같이 연기하는 환경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말 진심 혹은 필터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연기를 요구하는 분위기와 캐릭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허진호 감독님의 도움이 크다. 가장 좋았던 현장이었다." ▷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배우 정우와는 <붉은 가족> 이후로 (개봉 기준) 11년 만에 재회다. (영화로는) 오랜만에 같이 영화 현장에서 만나니 어떻게 변했던가.
"많이 변했다 (웃음). 정우 배우가 그동안 결혼도 했고 아이 얘기도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정말 큰 변화다. 정우는 예전에 배우는 “돌아다니지 않아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내성적이었고 술은 한 방울도 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술도 조금 하고, 사람들도 잘 만나고, 세월의 변화가 있는 건 분명하다." ▷ 영화가 촬영 이후 5년 만에 대중을 만나게 되는 것인데, 개봉이 늦어진 이유가 있나?
"코로나 이후로 영화 산업이 안 좋아지면서 개봉 시기를 잡는 과정 자체가 무너진 듯한 느낌이다. 어떤 영화가 먼저 개봉하거나 뒤에 개봉하거나 하는 순서 같은 것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팬더믹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이전에 맡았던 형사와 이번 형사 역은 어떻게 다른가.
"일종의 추적자 같은 역할이다. 부패 형사를 쫓는 역할이랄까. 다만 행동이 크진 않음에도 끊임없이 증거를 내미는 인물이다. 다만 이전에 형사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계산을 하진 않았다. 맥락이 제일 중요하고 그렇게 흐름으로 마주했던 프로젝트다." ▷ 김민수 감독은 이번 작품이 연출 데뷔이다 (불한당, 킹메이커 각본). 함께 한 작업은 어땠나.
"김민수 감독은 겉으로 보기엔 거칠 수 있지만 정말 여린 사람이다. 최근에 연락했을 때도 편집실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긴장이 컸다. 오랜만에 봤는데 예전 같은 ‘선머슴’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살도 많이 빠지고 달라진 모습이었다. 정말 이 작품이 절실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함께 작업하는 감독들이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감독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중이기도 하고, 영화의 제작비가 내려가면서 신인 감독들이 더 기회를 얻게 되는 현상도 보인다. 전 세대의 감독들과 신인 감독들을 다 경험하고 있는데 작업 방식에 있어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
"창작자들이 어려지는 만큼, 영화 자체도 어려지는 기분이다. 다만 그게 영화 연출뿐 아니라 영화의 스타일, 의상, 음악까지도 전반적인 취향이 그러하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마땅히 달라져야 하고,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이다. 나는 그런 환경에 대해서 이질감이 들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 오늘 영화를 부산에서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내가 정우 배우를 쪼는 장면이 있다. 나름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정우 배우를 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오늘 극장에서 처음 봤다. 내게는 그 장면이 왠지 모르게 가장 좋았다. 이 순간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는 관객들이 판단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웃음)." ▷ 현재 하고있는 작품은?
"촬영을 끝낸 작품 중에 <탄금>이라는 작품이 있다. 아직 공개 전인 넷플릭스 작품이다. 그리고 하정우 배우가 연출한 <로비>라는 작품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작품만큼은 정말 시나리오가 예술이다 (웃음). 반드시 보셔야 한다. 배우도 배우지만, 이야기의 힘이 어마어마한 작품이다. 하정우라는 아티스트의 작품관을 총망라한 극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역시 배우 박병은이 지난 20여년 동안 치열하게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를 하룻저녁에 상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그가 영화와 현장을 통해 겪고 본 것, 그리고 이루어 낸 의미 있는 성취를 기록하는 일은 꽤 흥미롭고도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박병은 배우의 창대한 원정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조선인 300명을 사살한 일본인 장교에서부터 백화점 식품관 팀장, 그리고 조선시대의 군관부터 지능팀 형사까지 박병은 배우는 그의 프로필 쇼트처럼 아이코닉하고, 인상적인 캐릭터들로 한국영화사의 페이지들을 장식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최근작,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김민수)가 [한국영화의 오늘: 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으로 초청, 상영되었다. 부국제에 참여 중인 박병은 배우와 그가 거쳐온 영화들, 그리고 이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오랜만에 부산국제영화제의 방문으로 알고 있다. 오랜만에 영화제에 참여하는 소감은?
"그렇다. 아마 한 10년 전 이었던 것 같다. 어제 개막식에 참여하면서 다른 배우들이 레드 카펫으로 들어오는 것도 봤는데 괜히 울컥하더라. 그래, “내가 영화인이었지, 배우였지” 하는 실감이 갑자기 들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요즘 산업이 전반적으로 수축한 상태라 더더욱 그런 울컥함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우정 출연과 단역을 포함해 총 39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필모그래피 상으로는 2002년 윤제균 감독의 <색즉시공>이 데뷔작인데, 그전에도 영화와 연을 맺고 있었는지.
"사실 그 이전부터 영화 아카데미나 학교 졸업작품 등에 정말 많이 출연했다. 그때는 씨네21이나 필름 2.0 뒤에 공고를 통해 배우를 모집하거나 했었다. 많은 프로젝트를 했고 나름 명성을 얻어서 나를 차지하기 위한(박병은 배우를 보내 달라는) 각축전이 일어났을 때다 (웃음). 기록상으로는 2002년 데뷔로 나와 있지만 그 전부터 이미 그런 학교 프로젝트를 많이 거쳤다."
▷ 2000년대 초반의 영화 현장과 2020년대 이후 현장은 어떤 것이 가장 달라졌나.
"일단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필름 시대의 촬영장은 정말 엄혹했다 (웃음). NG를 내도, 다시 하겠다고 해도, 필름이 비싸니 모두가 눈치를 봐야 했다. 나름 잘나가는 선배들은 필름을 자비로 사 올 테니 다시 하겠다는 말을 하는 그런 시대였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한 것은 영화 현장에서 느끼기엔 가장 큰 격변이 아닌가 싶다."
▷ 독립영화, <지구에서 사는 법> (2007)이라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자신의 연기를 본 느낌은 어땠는지.
"홍대 상상마당에서 개봉 이후, 상영 기간에 봤던 기억이 난다. 나를 제외하고 두 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던 것 같다 (웃음). 그때 첫 느낌은 현장에서는 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크린으로 보니 실상 그렇게 나오지 않은 부분들, 그런 걸 처음으로 목도했다. 현장과 나중에 보여지는 것들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 개인적으로는 박병은 배우가 인간적인 소시민으로 등장할 때가 가장 좋았다. <시민 덕희>의 박형사가 그랬고 <인간 실격>의 정수가 그랬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어떤 것인가.
"나 역시 <인간 실격>의 ‘정수’역을 좋아한다. 존경하는 전도연 배우와 같이 연기하는 환경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말 진심 혹은 필터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연기를 요구하는 분위기와 캐릭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허진호 감독님의 도움이 크다. 가장 좋았던 현장이었다." ▷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배우 정우와는 <붉은 가족> 이후로 (개봉 기준) 11년 만에 재회다. (영화로는) 오랜만에 같이 영화 현장에서 만나니 어떻게 변했던가.
"많이 변했다 (웃음). 정우 배우가 그동안 결혼도 했고 아이 얘기도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정말 큰 변화다. 정우는 예전에 배우는 “돌아다니지 않아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내성적이었고 술은 한 방울도 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술도 조금 하고, 사람들도 잘 만나고, 세월의 변화가 있는 건 분명하다." ▷ 영화가 촬영 이후 5년 만에 대중을 만나게 되는 것인데, 개봉이 늦어진 이유가 있나?
"코로나 이후로 영화 산업이 안 좋아지면서 개봉 시기를 잡는 과정 자체가 무너진 듯한 느낌이다. 어떤 영화가 먼저 개봉하거나 뒤에 개봉하거나 하는 순서 같은 것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팬더믹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이전에 맡았던 형사와 이번 형사 역은 어떻게 다른가.
"일종의 추적자 같은 역할이다. 부패 형사를 쫓는 역할이랄까. 다만 행동이 크진 않음에도 끊임없이 증거를 내미는 인물이다. 다만 이전에 형사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계산을 하진 않았다. 맥락이 제일 중요하고 그렇게 흐름으로 마주했던 프로젝트다." ▷ 김민수 감독은 이번 작품이 연출 데뷔이다 (불한당, 킹메이커 각본). 함께 한 작업은 어땠나.
"김민수 감독은 겉으로 보기엔 거칠 수 있지만 정말 여린 사람이다. 최근에 연락했을 때도 편집실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긴장이 컸다. 오랜만에 봤는데 예전 같은 ‘선머슴’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살도 많이 빠지고 달라진 모습이었다. 정말 이 작품이 절실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함께 작업하는 감독들이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감독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중이기도 하고, 영화의 제작비가 내려가면서 신인 감독들이 더 기회를 얻게 되는 현상도 보인다. 전 세대의 감독들과 신인 감독들을 다 경험하고 있는데 작업 방식에 있어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
"창작자들이 어려지는 만큼, 영화 자체도 어려지는 기분이다. 다만 그게 영화 연출뿐 아니라 영화의 스타일, 의상, 음악까지도 전반적인 취향이 그러하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마땅히 달라져야 하고,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이다. 나는 그런 환경에 대해서 이질감이 들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 오늘 영화를 부산에서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내가 정우 배우를 쪼는 장면이 있다. 나름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정우 배우를 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오늘 극장에서 처음 봤다. 내게는 그 장면이 왠지 모르게 가장 좋았다. 이 순간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는 관객들이 판단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웃음)." ▷ 현재 하고있는 작품은?
"촬영을 끝낸 작품 중에 <탄금>이라는 작품이 있다. 아직 공개 전인 넷플릭스 작품이다. 그리고 하정우 배우가 연출한 <로비>라는 작품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작품만큼은 정말 시나리오가 예술이다 (웃음). 반드시 보셔야 한다. 배우도 배우지만, 이야기의 힘이 어마어마한 작품이다. 하정우라는 아티스트의 작품관을 총망라한 극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역시 배우 박병은이 지난 20여년 동안 치열하게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를 하룻저녁에 상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오랜 시간에 걸쳐 그가 영화와 현장을 통해 겪고 본 것, 그리고 이루어 낸 의미 있는 성취를 기록하는 일은 꽤 흥미롭고도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박병은 배우의 창대한 원정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