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본비치니 / 사진. ⓒAlbrecht Fuchs
모니카 본비치니 / 사진. ⓒAlbrecht Fuchs
셀 수 없이 많은 전시를 접하지만, 머릿속 혹은 마음에 각인되는 전시의 수는 많지 않다. 지난 2022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모니카 본비치니(Monica Bonvicini, b. 1965)의 개인전 《I do You》는 그렇게 손꼽히는 전시 중 하나였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지은 미술관에 내재된 남성적 권력 구조를 드러내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이를 반영한 본비치니의 전시는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I do You> 전시 전경 / 사진. ⓒJens Ziehe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I do You> 전시 전경 / 사진. ⓒJens Ziehe
이탈리아 출신의 모니카 본비치니는 1980년대 베를린으로 이주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작가로 90년대 중반부터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건축처럼 우리를 둘러싼 공간, 권력 구조, 젠더 이슈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조각, 설치, 사진, 공공미술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화된다. 특히 역사적·정치적·사회적 리서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본비치니의 작품은 항상 전시되는 장소와 연계된 비평을 담아 미학적 즐거움을 넘어서는 예술의 가치와 의의를 재고하게 한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고, 베를린 비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 등 국제적 이벤트는 물론 뉴욕 MoMA PS1, 파리 팔레드도쿄,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한국에서는 2022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단체전, 2020년 부산 비엔날레, 2006년 광주 비엔날레 등을 통해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두 번째 아티스트로 그에게 인터뷰 제안을 했을 때, 지난번 방문했던 스튜디오가 아닌 새로 이사한 스튜디오로 방문해달라고 했다. 현재 새로운 스튜디오는 작가가 오랫동안 사용한 곳을 떠나 이사한 지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잘 정돈되어 있지만 아직 익숙함의 공기가 충분히 배어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칠지만 매력적인 베를린의 바이브를 지닌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위치하여 그를 둘러싼 이 공간의 활력이 어떻게 작업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 기대를 품게 했다.
작가가 스튜디오 내에서 주로 작업하는 공간 / 사진. ⓒ변현주
작가가 스튜디오 내에서 주로 작업하는 공간 / 사진. ⓒ변현주

▷베를린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떠나 베를린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베를린의 독특한 역사와 미술 현장이 작가님의 예술적 실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특별히 베를린으로 오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는 가족이나 친구도 없었고 특별한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이주한 후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느낄 수 있었죠. 이탈리아의 고향과는 달리, 베를린은 어둡고 다소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안전하며, 젊고 매우 흥미로운 도시였습니다. 당시에는 여전히 지역적이고 아직 베를린 장벽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었으며 지금처럼 국제적인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학생으로서 경험한 미술 현장은 아주 작았고 주로 독일 남성 화가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도시의 어두운 구석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반짝이고 행복한 곳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관심은 물론 경제적·재정적 관심이 미술 현장이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 세대의 국제적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으며 빈 공간을 점유하고 당시에 중요하게 여겨진 일들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악과 클럽 현장은 거대했고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파티가 열렸죠. 그 당시에는 여전히 비어 있고 점유되지 않았으며 소유가 불분명한 장소와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임대가 쉽고 저렴해 갤러리들이 베를린에 공간을 열었죠. 컬렉터는 없었지만, 많은 학생과 젊은 아티스트, 새로운 것을 향한 열린 태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일렉트릭 바에서 일하며 클럽 트레조어로부터 댄서 제안을 받기도 했고, KW 현대미술관이 여러 해 동안 제공한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으며 10년 넘게 계약 없이 대문에 제 이름이 적히지 않은 채 커다란 아파트에 살기도 했었죠.

많은 이들이 베를린을 지금의 위대한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5-10년 동안 미술 기관들도 국제화 되기 시작했죠. 이러한 기관들이 국제화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젊은 아티스트나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 작고한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공적 공간들이 훌륭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신국립미술관,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 하우스 암 발트제(Haus am Waldsee), 게오르그 콜베 미술관(Georg Kolbe Museum), 세계 문화의 집, 그로피우스 바우 같은 기관이나 킨들, 스포어(Spore) 같은 사립 기관이 베를린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같은 도시에는 훌륭한 미술 학교가 2~3개 이상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점이 바로 정치인들이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과소평가 되어온 부분입니다. 베를린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스튜디오 내부 전경 / 사진. ⓒStudio Monica Bonvicini
스튜디오 내부 전경 / 사진. ⓒStudio Monica Bonvicini
▷이사하게 된 이유가 기존 스튜디오가 있던 우퍼할렌의 개발 때문이었죠. 공장을 스튜디오로 개조한 우퍼할렌은 새로운 주인이 생기면서 입주 아티스트들에 불안감을 안겨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사용을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말이죠. 이처럼 베를린은 전반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작가님 개인적으로, 그리고 미술 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작가님의 스튜디오는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저의 진정한 첫 스튜디오라 할 수 있는 우퍼할렌에서 이사를 해야만 했죠. 이사하는 일은 매우 고된 일이었고 아직도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크로이츠베르크에서 이전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을 찾게 된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 변두리로 이사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이제 베를린 시내에서 아파트나 스튜디오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고 베를린은 예전과는 달리 부르주아적으로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스튜디오를 가진 이들은 훨씬 저렴한 임대료를 냈죠. 하지만 수십 년 전 베를린 미술 현장의 스튜디오 분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 아티스트 중 스튜디오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드물었고, 저 역시도 오랫동안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남성과 여성 아티스트 간의 수입 격차는 여전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베를린은 도시 내 문화 산업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젊은 아티스트, 중견·원로 아티스트에게 각각 적절한 가격으로 스튜디오를 제공해야 합니다. 현재 대부분 민간 투자자들이 건축하고 있고, 그중 많은 건물이 아티스트 스튜디오로 구상되고 있지만 그런 건물들은 아름답더라도 아티스트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저는 베타니엔(Kuenstlerhaus Bethanien)이나 DAAD처럼 오랜 시간 아티스트를 위한 스튜디오를 제공해 온 기관들, 칼리스(Callie’s Berlin)이나 그로피우스 바우 같은 곳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KW현대미술관에서 제공한 장소를 스튜디오로 저렴하게 이용하면서 저의 정신을 지킬 수 있었고, 이는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스튜디오 내부 전경 / 사진. ⓒStudio Monica Bonvicini
스튜디오 내부 전경 / 사진. ⓒStudio Monica Bonvicini
건축은 작가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2022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I do You》에서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공간을 변형시킨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한국 관객은 아마도 2019년 부산 비엔날레에서의 작품 <벽이 계속 움직이면서(As Walls Keep Shifting)>를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축과 공간은 작가님의 예술적 실천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는 미술 기관의 공간을 이용해 작업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건축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미술관의 건축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이 언급한 전시 《I do You》 외에도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유럽에 지은 유일한 미술관인 쿤스트할레 빌레펠트(Kunsthalle Beilefeld)에서의 전시도 그 예이죠. 그리고 2022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그룹전 《Minimalism-Maximalism-Mechanissmmm》에 선보인 작품 <플라스터드(Plasterd)>(1998-2022)를 기억하는 한국 관객이 있길 바랍니다.
<플라스터드>(1998-2022) / 사진. ⓒRémi Villaggi
<플라스터드>(1998-2022) / 사진. ⓒRémi Villaggi
제 조각작품 중 일부는 전시된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던 아트 옥스퍼드에서의 <로맨스(A Romance)>(2003)나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에서의 <지옥으로의 계단(Stairway to Hell)>(2003)이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새로운 렌조 피아노(Renzo Piano) 건물에 통합되지 못했지만요. 시카고 현대미술관의 새로운 공간에서 열린 첫 현대 미술전시를 위해 제작한 <나를 검게 밝혀주시오(Light Me Black)>(2009)나 독일 에센 전역에서 열린 공공미술 전시를 위해 제작된 <나를 만족시켜 주시오(Satisfy Me)>(2010)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지옥으로의 계단>(2003) / 사진. ⓒBaris Aras & Elif Cakırlar
<지옥으로의 계단>(2003) / 사진. ⓒBaris Aras & Elif Cakırlar
이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건축은 피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건축을 무시한 작업은 대부분 지루하다고 느낍니다. 예술은 결국 언제나 건축적 틀과 관련된 맥락에서 전시되며 벽이든 경계든 심지어 그것이 도시적 맥락이든 항상 무언가에 둘러싸입니다.

작가들이 전시 공간의 하얀 벽과 소통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즐겁게 느껴지고요? 네, 저는 그렇습니다. 저는 설치 작업을 매체로 30여 년을 작업해 왔습니다. 스스로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디를 주목해야 하며, 특정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예술입니다."

▷작가님이 사용하는 다양한 매체 – 조각, 설치, 드로잉, 비디오, 공공 프로젝트 등 – 에서 거울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로 보입니다. 작가님은 예술이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는데, 작업을 통해 반영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현재 탐구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90년대 초부터 건축 자재를 사용해 작업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석고보드나 벽돌, 체인에서 시작해 유리와 거울까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건설 공장에서 자재를 주문해 작업했죠. 거울은 비교적 새로운 재료일 수 있는데, 우리는 자기참조적이고 피상적이며 쾌락주의적인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거울은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그대로 비춰줍니다.

신국립미술관 전시에서 30m 이상의 거울 벽을 만들어 미술관 외부에 설치했는데 이는 외부를 내부로 새롭게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그러한 크기가 필요했습니다. 현재 뉴욕 타냐 보나크다르(Tanya Bonakdar)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거울을 나에게 사주시오(Buy Me a Mirror)>(2024)는 2 x 4 m 나무 틀로 된 문과 창 구조에 양면 거울이 설치된 작업입니다. 저는 그러한 설치 작업이 만들어내는 인식 전환의 순간에 관심이 있습니다. 철학적·정치적·현상학적 차원에서요.

제 작업이 현실과 아무 관련이 없다면 그건 미친 소리일 겁니다. 작업에 무엇이 반영될지에 대한 바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통제할 수는 없지요. 제 손을 떠나는 순간 어디에서 전시되고 있는지 같은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죠. 그렇지만 제 작업이 제공하는 집중의 순간, 전위의 순간, 의심의 순간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나를 만족시켜 주시오>(2010) / 사진. ⓒRoman Mensing
<나를 만족시켜 주시오>(2010) / 사진. ⓒRoman Mensing
▷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가죽과 금속 체인, 네온 같은 재료들은 강렬함과 도발, 때로는 성적인 함의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재료에 대해 관객이 어떻게 반응하고 상호작용을 하기를 기대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저는 작업할 때 일반적으로 제 생각을 따릅니다. 주변에서 본 것, 읽은 것, 제가 해온 것, 앞으로 나아갈 방향, 제가 실험하기 좋아하는 것들 같은 것들 말이죠. 작품은 때때로 저를 놀라게 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그 작품이 차지하는 공간과 전달하는 힘에서 놀라움을 느낍니다.

공간의 건축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주어지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준비할 때 수많은 회의와 대화를 하고, 공간 사용 방식에 대해 관찰하는 리서치를 합니다. 해당 미술관의 프로그램과 관객에 대해서도 고려하죠. 하지만 이와 별개로 공간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개인적인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재료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현장의 영향을 받지는 않죠. 그리고 해당 지역의 제조업체나 회사와 협력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이 제가 기대하는 수준의 품질을 제공할 수 있다면 말이죠.

아티스트가 국제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더 이상 관객을 예측할 수 없는 시기가 옵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는 친구나 동료, 알고 싶거나 교류하고 싶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국제적으로 전시를 시작하면 작업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대화가 아주 작아지면서도 동시에 거대해집니다.

저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특정 시기에 저에게 중요한 것을 할 뿐입니다. 그러다 그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것을 하죠. 조각 작업의 복잡하고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단순한 미적 수준의 호소에 그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를 하는 것, 그렇지만 성찰하게 하거나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조각의 매력입니다."
<나를 검게 밝혀주시오>(2009) / 사진. ⓒJohn McKenzie
<나를 검게 밝혀주시오>(2009) / 사진. ⓒJohn McKenzie
▷작가님 작업의 대부분은 권력 구조, 젠더 정치, 제도적 통제에 대해 비판합니다. 작업에서 미학과 정치적 메시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나요?

"정치는 항상 매우 동시대적입니다. 오늘 벌어졌다가 내일 사라지곤 하죠. 저는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 흥미롭거나 현재 뜨거운 이슈에 대해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논평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금세 그 시의성과 중요성을 잃을 수 있고, 지나치게 국가적 문제와 관련될 경우 더 넓은 범위의 관객에게 흥미롭지 않을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작업에서의 정치성은 주로 작품의 생산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제작하는지, 얼마나 제작하는지, 사용하는 재료, 그리고 만약 언어와 관련이 있다면 어떤 인용을 선택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편집할지에 대한 고민이 제 작업의 정치성을 결정합니다."

▷베를린 미술 현장의 중요한 인물인 동시에 베를린 예술대학(Universität der Künste)의 교수로서 많은 젊은 아티스트에게 존경받는 멘토이십니다. 아티스트로서 경력을 쌓는 데 있어, 특히 거주 장소를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2003년부터 가르쳐 왔고, 제자들의 작품이 갤러리나 비엔날레, 미술관, 아트 페어에서 전시되는 것을 볼 때 아주 기쁩니다. 그들 중 일부가 계속해서 전문적으로 예술을 하고 자신만의 시각적 언어를 발전시키며 관객과 큐레이터, 갤러리스트의 관심을 받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합니다. 그것이 제가 여전히 가르치는 것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이고, 학생들이 자신의 기술과 자신감을 키우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술을 공부하는 것은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성공에 대한 보장은 없고 성공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해야 하죠. 저는 대도시를 매우 좋아합니다. 혼돈과 불확실성, 모험, 대도시가 주는 다양한 경험을 좋아합니다. 다양한 계층과 사람, 문화가 어우러져 대도시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도시에 거주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찾고 가능한 많은 전시를 보러 다니세요. 모든 미술관을 가고, 다시 가세요. 예술을 하는 동안 즐기세요. 그리고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하세요.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일을 할 준비를 하세요.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해야 하고, 당신이 하는 일이 바로 곧 당신이어야만 합니다."

▶▶[관련 칼럼] "베를린의 문제적 듀오, 9월 용산 습격사건 기대하세요" [베를린의 작가들]

변현주 큐레이터
© All images
Monica Bonvicini and VG Bild-Kunst
Courtesy the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