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 노동조합의 파업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공급망과 여객·항공 등 관련 업계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보잉의 재무 상태도 악화해 기업 채권 신용등급이 ‘정크본드’로 강등될 위기에 놓였다. 2018년 신형 737MAX 설계 결함으로 추락 사고가 잇따른 데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쳐 올해 초엔 737 여객기가 운항 중 동체 문짝 패널이 떨어져 나가는 등 최근 5년간 악재가 누적됐다.

○항공사 등 동반 피해 현실화

보잉 파업 한달…글로벌 항공산업 대혼란
9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보잉 사측과 노조 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노조가 전날까지 향후 3년간 40% 임금 인상과 10년 전 폐지한 확정급여형(DB) 연금 복원 등을 고집하자 사측은 제안을 철회하고 테이블에서 철수했다. 스테파니 포프 보잉 상업용 항공기 부문장은 “노조 측 요구는 보잉이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며 수용할 수 있는 단계를 넘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측은 지난달 23일 최초 25% 인상안에 5%포인트를 얹어 향후 4년간 임금을 30% 올리겠다고 제안했다.

노조 소속 기계공 3만3000여 명의 파업이 계속되면서 보잉 737MAX와 767, 777 여객기 생산은 전면 중단됐다. 노조원이 없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 공장도 부품과 지원 시스템 등의 차질로 생산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P-8 초계기, KC-46A 공중급유기와 E-7 조기경보통제기 등 군용기 생산도 일제히 멈춰 관련 협력 업체 1000여 곳의 영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보잉은 현재 항공기 5490대 주문이 밀려 있다. 제이 티먼스 미국제조업협회(NAM) 회장은 “미국 노동자 50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항공우주산업의 혼란은 파괴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최대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는 여객기 도입 차질로 일부 노선을 축소하고 연간 실적 예상치를 낮췄다. 보잉뿐 아니라 에어버스도 프랫앤드휘트니 엔진 결함 등으로 일부 생산에 차질을 빚은 탓에 양쪽에서 여객기 인도가 지연된 몇몇 항공사는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윌리 월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사무총장은 블룸버그통신에 “항공기를 제때 인도받지 못한 몇몇 항공사가 조종사와 승무원을 휴직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루프트한자와 대한항공 등 주요 항공사도 낡은 기체의 수명을 연장해야 하는 형편이다. 777 여객기 25대를 주문한 아랍에미리트(UAE) 에티하드항공은 중고 보잉 777을 구해 사용하기로 했다.

○S&P 보잉 신용등급 강등 경고

보잉의 재무 상태도 파업 여파로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보잉은 약 600억달러 부채를 지고 있고, 지난 2분기 14억4000만달러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올해 상반기 총 70억달러에 달하는 현금흐름 감소를 기록했다. 전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보잉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하향했다. 현재 보잉 장기 신용등급 ‘BBB-’는 일반적 기관투자가가 투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며, 한 단계 낮은 ‘BB+’ 이하는 투기 등급으로 분류된다. S&P는 “보잉은 파업에 대응해 비용 절감 조치를 했지만, 파업이 지속되면 매달 10억달러 이상 손실을 볼 것”이라고 추산했다.

보잉이 조만간 100억달러 이상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설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보잉의 채권과 대출금 규모는 약 46억달러에 달한다. 세스 세이프먼 JP모간 애널리스트는 “보잉은 150억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조달하지 않으면 내년 여름 현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잉 주가는 이날 연중 최저 수준인 149.37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