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트헬스 연구원이 혈액 속 유전자를 분석하고 있다. 가던트헬스는 혈액 속 0.001%에 불과한 암 관련 신호를 찾아내는 기술을 보유했다.    /가던트헬스 제공
가던트헬스 연구원이 혈액 속 유전자를 분석하고 있다. 가던트헬스는 혈액 속 0.001%에 불과한 암 관련 신호를 찾아내는 기술을 보유했다. /가던트헬스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있는 가던트헬스 본사는 한눈에 봐도 규모가 엄청났다. 2만3000㎡, 4층짜리 건물에 근무하는 인력만 900명을 웃돈다. 2012년 창업해 실리콘밸리 1세대 기업인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가 30년 넘게 본사로 쓰던 건물에 입주한 이 회사는 글로벌 액체생검 시장 선두 주자로 꼽힌다.

2014년 ‘피 한 방울로 250여 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기업가치를 10조원까지 끌어올린 테라노스의 사기극이 있은 지 10년 만에 환상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본사에서 만난 크레이그 이글 가던트헬스 최고의학책임자(CMO)는 “혈액 40mL만 있으면 대장암뿐만 아니라 위장 폐 췌장 등 다중 암의 조기 발견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기’라던 액체생검의 반전

사기라더니 '대반전'…피 검사로 '초기암'까지 잡아낸다
액체생검은 암 정복을 위한 관문으로 불린다. DNA 검사를 통해 종양을 미리 발견함으로써 선제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2032년에는 586억달러(약 79조원) 규모로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던트헬스는 조기 진단 분야에서 실드(Shield)라는 대장암 스크리닝 제품을 통해 조기암 진단 시장에 진출했다.

실드는 간단한 피검사로 검진이 가능한 제품이다. 혈액검사 정확도는 83%(민감도 기준)에 달한다. 이글 CMO는 “대장암 초기 환자도 검진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는 분변잠혈검사와 같은 수준의 정확도다. 대장내시경의 암 검사 정확도는 약 95%다. 다만 두 검사는 절차가 까다롭다. 이에 국내 대장암 검사 수검률은 41%에 불과하다.

어떻게 혈액검사만으로 특정 암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암세포는 통제되지 않고 폭발적으로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 잔여물이 혈액으로 방출된다. 여기에는 종양의 DNA도 포함돼 있다. 이를 순환종양DNA(ctDNA)라고 부른다. 혈액 10mL 속 혈장에는 약 1만 개의 DNA 조각이 존재하는데, 초기 암환자 기준 암 DNA 조각은 이 중 0.1개 수준으로 발견된다. 가던트헬스는 이를 잡아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글 CMO는 “암은 위치별 유전자 변이가 다르다”며 “ctDNA 내 유전정보를 분석하면 어느 위치에 생긴 암인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정보 분석으로 암 위치 확인

여러 액체생검 회사가 있지만 질병을 1차 진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은 것은 가던트헬스가 유일하다. 이글 CMO는 “우리는 테라노스가 아니라 진짜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며 “500개가 넘는 논문을 발표하며 과학적 근거를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가던트헬스는 피검사로 검진 가능한 암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대장암뿐만 아니라 위장 폐 췌장 등 다중 암의 조기 발견으로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액체생검으로 다중 암을 검사할 수 있다면 암 치료의 판도가 바뀐다. 췌장암같이 검진이 어려운 암도 비교적 쉽게 발병 여부를 검사할 수 있게 된다.

또 미세 암 조기 검진도 가능해진다. 지금은 암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자라야만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혈액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암 단계에서도 진단이 가능하다. 대장암의 경우 1기 환자는 5년 생존율이 90%에 달하지만 4기는 30~40% 미만으로 떨어진다. 이글 CMO는 “예방이 어떤 치료보다 효과적이듯 조기 발견도 그렇다”며 “간단한 혈액검사로 빠른 진단이 가능해지면 많은 환자를 살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완치가 빨라지면 환자가 암 치료에 들여야 하는 비용과 병원이 한 명의 암 환자 치료를 위해 투입해야 하는 인력 모두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팰로앨토=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