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도 인공지능(AI)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3개 노벨 과학상 중 생리의학상을 제외한 2개 상의 주인공이 AI 전문가인 것이다. 순수 학문 연구자에게 주던 노벨상의 중대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AI가 정보기술(IT)뿐 아니라 현대 과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을 의미한다.

수상자들의 면면만 봐도 AI는 이미 기초과학 발전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와 존 홉필드 프린스턴대 교수는 대용량 데이터를 과학에 쉽게 접목할 수 있는 AI 기술의 기초를 닦았다.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 등은 AI를 단백질 연구에 활용해 신약 개발 기간을 앞당긴 공로를 인정받았다. 베이커 교수는 “AI로 원하는 단백질을 마치 기계 설계하듯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지만 한국의 AI 경쟁력은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AI 최강국인 미국을 따라가려면 447년이 걸릴 것이란 비관론까지 나올 정도다. 기술 수준에서 뒤지다 보니 국내 인재는 해외에 빼앗기고 있다. 한국의 AI 인재 유출은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스탠퍼드대 분석)로 많다. 이 때문에 2027년까지 국내 AI 분야에서 1만2800명이 부족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연구 인프라를 개선해야 하나 국내 환경은 거꾸로 가고 있다. AI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달라는 산업계 요구는 국회 벽에 가로막혔고 ‘AI 기본법’은 정치적 논쟁에 밀려 2년간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올 들어 22대 국회에서 새로 발의된 AI 관련 법안은 AI산업 육성보다 AI 부작용을 막으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27년까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AI 시대의 낙오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승자독식이 그 어느 분야보다 강한 AI에서 한 번 뒤처지면 국가 미래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AI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