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 남부와 천안 첨단특화단지에 공급하기 위해 건설 중인 북당진~신탕정 전력망 사업은 원래 2012년 12월 준공이 목표였다. 하지만 예정 시점을 12년 넘긴 오는 12월에야 공사가 마무리된다. 주민 민원으로 입지 선정만 78개월 지연됐고, 당진시의 인허가 지연으로 다시 72개월이 늦어졌다. 전체 36㎞ 구간 가운데 5.8㎞는 끝내 주민을 설득하지 못해 지중화 작업을 했다. 이 때문에 공사비가 1800억원 추가됐다.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실은 2조원에 달한다.

하남시 퇴짜 후 더 거세진 '님비'…"전력망 특별법 빨리 재추진해야"
준공 시점이 90개월 늦어진 당진~신송산(주민 민원), 66개월 늦어진 동해안~수도권(지방자치단체 인허가 지연) 사업의 예에서 보듯 전력망 건설사업이 늦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님비(NIMBY: 우리 집 뒤뜰은 안 돼)’ 현상이다.

정부는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의 첨단시설로 끌어오려면 전력망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방침이지만 지역 주민들은 지방을 ‘에너지 식민지’ 취급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전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 특별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0일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7~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내 송전망 건설 계획에 따라 착공한 36개 사업 중 단 3개만 적기 준공됐다. 공사가 지연된 33개 사업 가운데 78.8%(26건)가 인허가 지연과 주민 민원 때문이었다. 전력망 공사 지연은 2000년대 초반부터 반복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말 경기 하남시가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보내는 송전망의 최종 관문인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 인허가를 주민 반대로 불허하자 각 지자체 주민의 반대는 더 극심해지고 있다.

하남시의 인허가 불허로부터 한 달여 지난 지난달 24일 전북자치도 고창군의회는 ‘신장성~신정읍 송전선로 건설사업 전면 재검토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송전선로는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과 전남 신안 해상풍력 발전단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것으로 2020년 9차 전기본에 담겨 발표됐다. 2029년 12월 준공될 예정이다.

전력망 갈등은 전력 생산과 소비의 지역 편중 때문에 벌어진다. 2023년 현재 수도권은 전체 전력의 40.2%를 쓰지만 생산은 27.4%에 그친다. 반면 호남 지역과 강원 지역은 각각 7.8%와 5.8%를 쓰지만 13.7%와 12.7%를 생산한다. 2047년 완공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추가 수요가 최대 10기가와트(GW)가 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편중 현상은 더 극심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10GW는 원전 8개 분량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송전망을 조속히 건설해 지방 전력을 수도권으로 더 많이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지자체 주민들은 ‘수도권에서 쓸 전기를 왜 지방이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도권에 원전 같은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송전망 특별법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전망 특별법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전력망확충위원회를 구성해 한전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 주민과의 갈등을 중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슬기/황정환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