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 조합원 10명 중 9명이 직무 특성이나 직무가치를 반영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노조의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거론되는 현대자동차 노조에서도 호봉제를 중심으로 하는 현행 임금체계를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단독] '강성' 현대차 노조도 "임금체계에 직무 특성 반영해야"

◆92.0% “임금체계에 직무가치 반영”

10일 현대차지부가 발행한 노동조합 신문(노보)에 따르면 지난달 3일부터 12일까지 노조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무의 특수성이나 직무가치를 반영한 수당 등이 포함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기술·정비·영업직 조합원의 92.0%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직무수당과 관련해 가장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질문엔 ‘수당의 복잡함’이라고 답한 의견이 37.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직군별 특성 미반영’(32.3%), ‘복잡한 직무체계’(15.3%) 등의 순이었다. 오랜 기간 노사 협상 과정에 각종 수당이 생기면서 복잡해진 임금체계에 조합원들이 커다란 문제 의식을 갖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수당체계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엔 응답자의 92.0%가 ‘그렇다’고 답했다.

직무급제를 도입할 경우 상대적으로 영향을 크게 받는 연구개발직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보수적인 답변이 나왔다. ‘현대차가 임금체계 개선을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9.4%가 ‘호봉제 특성 유지한 별도 임금체계(병행)’를 선택했다. 사실상의 성과급제인 연봉제는 15.1%, 직무에 따라 지급하는 직무급 체계는 14.2%에 그쳤다. 성과 연동형 임금체계보다는 호봉제를 기반으로 임금 체계를 개선하자는 의견이 더 많은 것이다. 다만 연구개발직도 ‘현재 임금체계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일부 개선·보완 필요’ 응답이 57.4%로 가장 많았다.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22.8%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이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현재 임금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설문조사 놓고 노조 내부에서 ‘논란’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노조 내부에서도 논란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는 노조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설문조사 실시 자체에 항의가 거셌지만 집행부가 설문을 강행했다”며 “의도가 있는 문항으로 사측이 제시한 개악안을 지지하는 결과를 냈다”고 성토했다. 직무급제 도입이 호봉제 폐지로 이어지면서 근로자들의 기존 임금 수준을 저하시키거나 고용유연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앞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도 10일 연구·개발직을 대상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조인식을 가졌지만,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는 승인을 거부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연구직과 일반직 사원·대리급의 호봉제를 폐지하는 임금 체계 개편을 추진했지만, 노조 측 반발로 도입이 무산됐다.

노조 관계자는 “해당 설문을 바탕으로 내년 노사 협상(임단협)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핵심 아젠다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노사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현대차가 직무급제 도입에 성공할 경우 노사관계 판이 뒤집힐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소속 조합원은 총 4만3000명으로 금속노조 조합원(18만6000명)의 23%에 달한다.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직무급제 도입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우선 과제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조선업, 자동차 부품제조, 석유 화학업 등 사기업 중심으로 컨설팅을 실시하면서 직무급제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곽용희/김진원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