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광산기업 선두인 BHP가 구리 광산 인수에 몰두하는 반면, 글로벌 2위 기업인 리오틴토는 리튬을 자신들의 차세대 주력 광물로 점찍었다. 지난주 현금 총 67억달러(약 9조원)로 리튬 생산기업 아카디움리튬을 인수했다. 리오틴토는 아카다움리튬을 합병하면 미국 앨버말에 이어 생산 능력 기준 업계 2위가 된다. 지금은 리튬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했지만, 장기적으로 공급이 부족해질 것으로 리오틴토는 예상한다. 향후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며 배터리용 리튬 수요가 연간 10%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인수 가격을 당초 예상됐던 40억달러의 1.5배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올린 것은 무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리오틴토가 자신의 몽골 오유 톨고이 구리 광산과 기니 시만두 철광석 광산 등의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자신감이 과해졌다는 농담 섞인 분석도 나온다. 리오틴토는 2007년 원자재 가격 급등 당시에도 상투를 잡고 캐나다 최대 알루미늄 기업 알칸을 380억달러에 인수하는 등의 실책을 저질렀다. 해당 인수는 지금도 광산 업계 최악의 거래로 꼽힌다.

그러나 리오틴토는 아카디움리튬의 리튬 추출 기술에 대해 강조하며 이번 인수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항변한다. 리튬 추출 과정에서 환경 오염을 막고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업계의 판도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심한 주민 반대가 일어날 경우 자원 개발 프로젝트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Copyright © 2023 Rio T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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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디움의 리튬 직접 추출 기술에 주목

아카디움리튬 인수는 업계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리튬 추출 기술 경쟁의 연장선 위에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오틴토가 웃돈을 준 것은 아카디움리튬 직접 리튬 추출(DLE) 기술 노하우 때문이란 설명이다. 로이터통신은 "리오틴토는 오랫동안 광석 채굴 분야를 선도해 왔지만, 리튬 생산의 핵심인 화학 처리에 대한 전문 지식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아카디움리튬이 보유한 DLE 기술은 대규모의 수자원과 부지를 필요로 하는 증발 연못이나 노천 광산 채굴 등 기존 방식보다 진보된 방식이다. 증발 연못을 사용하면 약 50%의 리튬을 추출하는 데 비해 직접 추출 방식은 염수에서 약 90% 이상의 리튬을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염수를 증발시킬 경우 생산 기간이 최대 18개월이 걸리지만 직접 추출 방식은 이를 2주로 단축시킬 수 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일 수도 있다.

최근 업계에선 염수·리튬광물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 경쟁이 한창이다. DLE 기술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고 업계 1,2위인 미국 앨버말과 칠레 SQM 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DLE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엑슨모빌과 셰브런 등의 석유 기업들도 이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손잡고 리튬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각 국 정부도 DLE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볼리비아는 지난 2년간 DLE 기술 개발에 8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고, 중국 CBC, 이탈리아 프로텐코(Protecno), 프랑스 에라멧(Eramet), 호주 오(Eau) 리튬 등 4개 기업을 최종 후보로 선정해 리튬 추출 플랜트 건설·운영 경쟁 입찰을 실시중이다. 칠레도 프랑스 기업 아디오닉스(Adionics)와 손잡고 국영 리튬기업 SQM의 플랜트에서 리튬 직접 추출 시험을 하고 있다. 리튬을 추출하기 위해 지하수를 집중적으로 퍼 올린 지역에서 지반 침하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어서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소금평원의 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마다 1∼2㎝씩 지표면이 가라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국기와 플래카드를 들고 정부의 리오 틴토의 리튬 광산 허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AFP
지난 8월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국기와 플래카드를 들고 정부의 리오 틴토의 리튬 광산 허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AFP

자다르 광산 시위...러시아 가짜뉴스 공세, '세르비아판 광우병' 논란?

리오틴토가 추진중인 세르비아 자다르 광산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데도 새로운 리튬 추출 기술을 홍보하는 게 관건이 될 전망이다. 리오틴토는 2021년 자다르 광산 개발 허가를 받았으나 환경오염 등을 우려한 지역 주민 반발로 허가가 취소됐고, 지난 7월 재허가를 받았지만 이번에도 전국적인 시위에 직면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경단체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고 압도적인 여론의 반대에 직면했다. 온라인에선 리튬 광산에서 비밀리에 우라늄을 채굴하고, 식수를 오염시킬 것이라는 등의 괴담이 넘치고 있다. 광산이 건설되면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황산비가 내릴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온다. 자다르 광산은 베오그라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12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리오틴토는 필사적으로 괴담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다르 광산은 염호(소금물 호수)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게 아니라 리튬 광물인 자다라이트(Jadarite) 광상을 채굴해 처리하는 방식이라 대량의 지하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리오틴토는 "자다르 프로젝트는 세르비아와 유럽연합(EU) 법규에 따라 엄격한 환경 요건을 준수하며 환경영향평가 및 허가 절차를 거쳤다"고 강조한다.

괴담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러시아가 조직적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어서란 주장도 나온다. 제프리 파이엇 미국 에너지 자원 담당 국무부 차관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광산의 환경 오염 우려에 대한 온라인 주장은 이전의 러시아 허위 정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발칸반도의 세르비아는 EU 가입을 원하면서도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제재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아직도 직항 항공편이 운항 중이다.

베오그라드의 국제안보연구소의 오르한 드라가시 소장은 WSJ 인터뷰에서 "리튬 프로젝트는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EU의 경제 및 전략 계획에 포함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이는 모스크바에 큰 위협이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자다르 광산엔 약 120만t의 리튬이 매장돼 있다. 5만8000t의 탄산리튬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연간 수요의 17%에 해당하는 전기차(약 100만대)의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리튬을 약 40년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