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프랑스 파리 국회에 출석한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 /사진=REUTERS
지난 8일 프랑스 파리 국회에 출석한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 /사진=REUTERS
심각한 재정 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프랑스 정부가 내년 60조원의 공공 지출을 줄이고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30조원 가까운 추가 세수를 거둬들인다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10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재정경제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내년도 예산안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6.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 적자를 내년 5%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프랑스는 이미 GDP의 110% 이상인 약 3조2000억유로의 국가 부채를 지고 있어, 이자로만 올해 500억유로 넘는 예산이 쓰였다. 지출을 줄여도 내년 부채 연장을 위해 올해보다 150억유로 늘어난 3000억유로의 국채를 새로 발행해야 한다. 프랑스 국채 이자율은 스페인보다 높다. 미셸 바르니에 총리는 "불량 수표를 남발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희생시켜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산안의 핵심은 대대적인 공공 지출 삭감과 이른바 '대기업·부자 증세'다. 재경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413억유로(약 61조원)의 지출을 절감할 예정이다. 이 중 215억유로는 중앙정부, 50억유로는 지방정부, 나머지는 사회보장제도 예산에서 줄인다. 공무원 인력 감축, 연금 인상 6개월 중단, 각종 보조금과 사법·노동·교육·스포츠 예산 삭감 등이 포함됐다. 다만 사회 안전과 국방 예산은 소폭 증가시켰다.

증세 규모는 193억유로(약 28조5000억원)로 책정했다. 이 가운데 136억유로를 대기업에서 걷을 계획이다. 매출이 10억 유로(약 1조4000억 원)를 넘는 대기업은 2024년과 2025년 이익에 대해 한시적으로 법인세가 인상된다. 매출 10억유로 이상 30억유로(약 4조4000억원) 미만인 기업은 법인세가 20.6% 할증되고, 30억 유로 이상 기업은 41.2%가 할증된다. 약 400개의 프랑스 대기업이 한시적 법인세 인상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초고소득자에 대한 한시적 증세로 20억 유로(약 3조원)를 추가 확보한다. 1인 가구는 연 소득 25만유로(약 3억7000만원), 자녀가 없는 부부의 경우 50만유로(약 7억4000만원)를 넘으면 최저 소득세율 20%를 적용한다. 이는 전체 납세자의 약 0.3%에 해당하는 6만5000가구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예산안의 하원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여당 의석이 하원에서 과반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좌파는 물론 범여권 내에서도 정부의 증세 방침 등에 반대 의견이 상당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정부가 헌법 제49조 3항을 이용해 하원 표결 없이 예산안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있으나 이는 내각 불신임 투표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