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에 미등록 차량 경고문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에 미등록 차량 경고문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배달하는데 아파트 출입하려면 사전등록을 하라네요. 시간에 쫓기는 배송 기사에게 일일이 사전등록을 하라니 갑질 아닙니까"

대출금 상환을 위해 '투잡'으로 배달원을 택한 현모씨는 최근 음식을 배달하러 간 아파트에서 출입을 거부당했습니다. 그가 배달에 쓰는 전기차가 해당 아파트 단지에 등록되지 않은 차량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현씨는 경비원에게 배달 차량이라고 말했지만, 음식을 주문한 입주민이 직접 확인해준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항의하니 아파트에선 오토바이를 막진 않는다고 하는데, 음식 배달을 오토바이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안 그래도 바쁜데 언제 어느 아파트로 갈 줄 알고 사전등록을 하겠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노후 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부족합니다. 1980년대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면 수도권의 경우 전용면적 60㎡ 미만은 가구당 0.2대, 전용 85㎡ 미만은 가구당 0.4대의 주차 공간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이후 주차 공간을 더 확보하도록 규정이 개선됐지만, 1996년에야 전용 60㎡ 미만에 0.7대, 전용 60㎡ 초과는 1대로 확대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노후 아파트는 가구당 1대를 대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아파트 내 주차된 차량에 주차위반 경고장이 가득 붙어 있다. 사진=보배드림
아파트 내 주차된 차량에 주차위반 경고장이 가득 붙어 있다. 사진=보배드림
부족한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자 노후 아파트에서는 외부 차량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단지 내 외부 차량에 주차금지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이 주류를 이뤘지만, 현행법상 이미 들어온 외부 차량에 과태료를 물리거나 강제 견인할 근거가 없다는 한계가 부각되면서 최근에는 외부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차단기를 설치하는 단지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단지의 경우 우체국이나 택배 기사 등은 차량 번호를 미리 등록하고 출입합니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에서 담당 구역이 따로 없는 배달 기사와 중고 거래를 하러 온 방문객에게까지 사전 등록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배달 기사 상당수가 오토바이를 이용하지만, 보험료와 안전성 등을 고려해 전기차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사전에 차량 번호를 등록해야 출입할 수 있는데, 매번 다른 아파트를 향하는 배달 기사의 특성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 아파트 단지에 외부 차량 주차를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한 아파트 단지에 외부 차량 주차를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부피가 큰 중고 물품을 거래하고자 차를 타고 다른 아파트를 찾는 이들도 불편을 겪긴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어린이용 트램펄린을 사기 위해 이웃 단지에 다녀왔다는 김모씨는 "아파트 정문에서 중고 거래를 하러 왔다고 말했는데, 출입구를 바로 열어주지 않았다"며 "경비실에서 해당 가구로 전화해 중고 거래를 하는지 확인하느라 기다려야 했는데, 뒤로 다른 차들이 길게 줄을 서 민망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외부 차량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아파트에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차환경 개선을 위해 현황을 조사했더니 입주민 차량이 많은데다 외부 차량이 들어와 장기 주차까지 하는 탓에 주차난이 가중됐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들어온 차량을 내보낼 방법이 없다. 바퀴에 잠금장치를 채울 수도, 강제로 견인할 수도 없다면 애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뿐이지 않겠느냐"며 "입주민들이 비용을 들여 차단기를 설치하고, 외부 차량은 방문 세대의 확인이 있어야 출입하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유지에서 입주자들이 정한 것을 외부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