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종을 넘는 사랑
미국 실리콘밸리라고 하면 흔히 기술로 가득한 미래지향적 도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실리콘밸리가 의외로 시골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사는 언니도 처음 샌프란시스코공항에 내렸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늘이 너무 파랗고 공기가 깨끗해서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생각했다고.

나와 언니는 에메랄드힐스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 동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로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언덕이다. 다운타운 쪽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는 하나, 달걀 때문이다. 넓은 마당에서 닭을 키우며 집에서 낳은 알을 먹고 사는 것이 로망이었다. 이사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여운 병아리 네 마리를 사서 키웠다. 하지만 첫 네 마리는 몇 달 후 핼러윈 밤, 닭장 문을 닫지 않은 탓에 들짐승에게 빼앗겼다.

다시 귀여운 병아리 네 마리를 사다가 좀 더 애지중지 키웠지만, 또 닭장 문 닫는 것을 잊었다. 결국 검은 닭 한 마리만 남았다. 이 아이는 얼마나 영리한지 눈치도 빠르고 나와 의사소통도 가능했다. 맛있는 알도 매일 낳았다. 우리는 이 아이에게 ‘이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쓰다듬어 주며 많은 정을 쏟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이웃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밖에서 놀던 이쁜이를 자기 집 개가 물었다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화들짝 놀라 돌아왔다. 우리를 본 이쁜이는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상처는 심각했다. 여러 동물병원에 연락했지만, 닭을 봐주는 병원은 흔치 않았다. 간신히 찾은 병원에서 이쁜이는 몇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치료받을 수 있었다. 등에 깊이 물린 상처를 길게 꿰매고 기진맥진한 이쁜이를 보며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

그런데 이쁜이는 내 아픈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설치며 이쁜이를 돌봤다. 2주 동안 매일 집에서 일하며 욕창이 난 엉덩이도 닦아주고 안고 물, 약, 액체 사료를 먹이면서 계속 얘기해줬다. 힘내라고. 그러면서 이쁜이는 조금씩 힘을 되찾았다. 한 달 후쯤 물린 자리에 작은 솜털들이 올라왔다.

그 후 1년 반이 지나고 이쁜이는 다시 약해졌다. 이쁜이를 수술해준 수의사에게 다시 데려갔지만 이미 너무 쇠약해져 별 차도가 없었다. 결국 이쁜이는 그렇게 갔다. 수의사에게 이쁜이의 죽음을 알렸더니, 그분도 함께 슬퍼해 주셨다.

이쁜이가 죽은 몇 달 후, 수의학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대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이쁜이를 치료했던 수의사 선생님이 이쁜이(Ipuni) 이름으로 수의학과에 기부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마음이 불안하고 허전할 때 동물이나 식물을 친구로 들여 정성을 다해 보자. 그들이 주는 믿음과 사랑은 지친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