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지난해 감소한 국제무역 규모가 올해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정치 성향이 다른 국가 간 무역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도 같은 진영끼리 뭉치는 ‘무역 분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금리인하 행렬…세계 무역 성장세 가팔라진다

○진영 간 무역 분열 징후

세계무역기구(WTO)는 10일(현지시간) 발표한 ‘국제무역 전망’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출과 수입이 지정학적 노선을 따라 재편되는 등 무역 흐름이 분열되는 징후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WTO는 지난해 전쟁과 고금리 여파로 전년 대비 1.1% 감소한 세계 상품 교역 규모가 올해 2.7%, 내년 3.0%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4월 전망치보다 올해는 0.1%포인트 올리고 내년은 0.3%포인트 내렸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들자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했고, 늘어나는 소비·투자가 글로벌 무역 회복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WTO가 동서로 가상 진영을 나눈 결과 1월 기준 진영 내 무역은 전쟁 전보다 4%가량 증가했지만 진영 간 무역은 약 10% 감소했다. 두 진영은 유엔총회 투표 패턴에 따라 분류했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등 국제 제재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별도 보고서를 통해 미·중 진영 간 무역량 감소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중국 진영에서 미국 진영으로 수출이 줄어든 것은 각각 30%가 미국의 중국산 수입 감소,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상품 수입 감소 때문이었다. 반면 미국 진영에서 중국 진영으로의 수출 감소는 약 60%가 한국·대만·일본의 대중 수출이 줄어든 결과였다.

이런 추세는 대체 공급 업체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순 상품 무역에서 두드러졌다. 무역 분화가 아직 ‘세계 무역의 단절’ 또는 ‘근거리 무역화’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WTO는 진단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글로벌 무역 통합은 최근 충격에도 비교적 큰 타격을 보지 않았지만, 지정학적 요인으로 무역은 국가별 진영으로 재편되고 있고 서방과 중국 경제권 모두 수입 자립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대만해협 봉쇄 3300조원 피해”

WTO는 무역 분화와 함께 지정학 갈등 확대, 주요국 간 통화정책 괴리 등을 국제무역 성장률을 끌어내릴 요인으로 거론했다. 중동 전쟁이 격화하면 해상 운송 차질, 원유 공급량 감소, 유가 프리미엄 상승 등이 무역 부담을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주요국 통화정책이 엇갈리면 급격한 환율 변동이 발생하고 신흥국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역시 대만해협 봉쇄로 발생할 수 있는 ‘글로벌 무역 쇼크’를 경고했다. CSIS는 “중국이 상륙작전을 펼치기보다 해안경비대 주도로 대만 해역을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우발적 사태는 매년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수조달러 규모의 무역을 위협한다”고 했다.

CSIS는 대만해협 봉쇄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국가로 한국과 일본을 지목했다. 각각 수출의 23%, 25%를 이곳에 의존하는 데다 원유 등 주요 원자재 역시 대만해협을 통해 수입하기 때문이다.

CSIS는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해상 물동량을 세계 무역의 약 20%인 2조4500억달러(약 3300조원)로 추산했다. 미국 행정부가 추정한 홍해 물동량(세계의 약 15%)보다 더 큰 규모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