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벤처 85%는 '떡잎' 수준인데…정부는 "후기 임상만 지원"
“업계가 고사 위기인데 정부가 백신 개발 및 임상 후기 단계 기업만 지원할 때입니까.”

한 바이오업체 대표는 ‘K바이오·백신펀드’에 대해 “‘바이오 혹한기’에 업계의 사실상 유일한 자금줄인데도 대다수 신약 개발 초기 단계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백신 개발이나 임상 단계에 들어간 일부 바이오 기업만 지원 대상이다 보니 자금난을 겪는 대다수 바이오 기업엔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다.

○‘산으로 가는’ K바이오펀드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뒤 백신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키우고 기술 수출 대신 임상 3상까지 자체 비용으로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자는 취지에서 1조원 규모의 메가펀드 조성 정책을 수립했다. 2022년 예산에 처음 반영했고 그해 9월 펀드 운용사를 선정했다. 하지만 펀드 결성까지 1년3개월이 소요됐다. 통상 6~9개월이 걸리던 펀드 결성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여파로 바이오 투자심리가 급랭한 탓이었다. 투자업계에선 펀드 규모를 1000억원대로 줄일 것을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다. 펀드 자금을 빨리 모으고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의 숨통을 서둘러 터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메가’(초대형) 펀드 조성을 고집했다. 결국 펀드 자금 모집은 난항을 겪었다. 펀드 규모도 5000억원, 2500억원으로 줄었다. 복지부가 자체 예산 300억원, 국책은행이 3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는데도 민간 투자자를 모집하기 어려웠다.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일부 운용사는 자격을 반납했다. 결국 1호와 2호 펀드는 정책 발표 후 2년이 지나 ‘늑장 결성’됐다. 펀드 규모도 각각 1500억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조성 중인 1000억원 규모의 4호 펀드엔 기존 출자자였던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아예 빠지기로 했다. 이를 메우느라 복지부의 출자액은 직전 150억원(3호 펀드)에서 4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시장 수요와 동떨어진 펀드 양산

K바이오펀드는 백신 관련 국내 기업과 임상단계 바이오·헬스 분야 기업이 투자 대상이다. 전임상(동물실험) 단계 수준의 초기 신약 개발 회사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국내 바이오·헬스 기업 2000여 개 가운데 80~85%(1600~1700개)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업계에선 정부가 시장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엉뚱한 펀드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달 결성될 3호, 운용사 선정을 앞둔 4호, 향후 조성될 5호까지 합치면 총 6000억원 규모다.

업계가 위기 상황인 만큼 K바이오펀드가 벼랑 끝에 몰린 우량 초기 신약 개발사를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분기 상장 바이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비는 전년 동기 대비 16.5% 감소했다. 한 바이오업체 대표는 “정부 펀드라면 민간 펀드가 못하는 일,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한 우량 기업을 우선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소액 투자 펀드가 더 절실”

업계에선 ‘백신 개발’과 ‘임상 3상 자체 진행’이라는 비현실적인 조건을 바꾸거나 새로운 펀드를 추가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 세계 백신 시장은 미국 화이자, 프랑스 사노피 등 소수의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독과점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 회사의 전체 연구비는 연간 4조원으로 미국 화이자(17조7000억원), 스위스 로슈(18조9000억원) 등과 비교해 경쟁 자체가 안 된다. 한 제약사 대표는 “항암제 등 신약의 글로벌 임상 3상에는 1조~2조원이 필요하다”며 “이를 감당할 기업이 국내에는 거의 없다”고 했다. K바이오펀드의 투자 조건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500억원 이하의 소규모 펀드, 재기지원 펀드, 인수합병(M&A) 지원 펀드 등을 제때 내놨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다양한 펀드 정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