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고속도로’를 짓는 전력망 확충 사업 중 고작 8%만 정해진 시간표대로 공사를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7~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지난 10년간 착공한 송전망 건설 사업은 36개다. 그중 3개 사업만 제때 준공됐다. 반도체 클러스터부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까지 전기가 대량으로 필요한 첨단산업을 국가 명운을 걸고 키운다더니 정작 전기가 없어 세워놓거나 유치를 포기할 판이다.

공사가 늦어지는 이유는 지역 주민 반발과 이를 의식한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지연이 80%를 차지한다. 하루라도 전기 없이는 못 살아도, 우리 지역으로 송전망이 지나가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전형적인 님비(NIMBY)다. 2012년 말 준공이 목표였던 충남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1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막바지 공사 중이다. 지난 8월엔 경기 하남시가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망의 최종 관문인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주민 반대를 앞세워 퇴짜놨다. 이 바람에 어렵사리 지은 발전소들을 그냥 놀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서해안의 태양광발전소 등도 마찬가지다.

전기 수요는 폭증하는데 주민들의 반대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미 송전망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혼자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됐다. 정부가 직접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인허가 절차도 개선하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절실한 이유다.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이지만 22대 국회 들어 8건이 다시 발의됐다. 22대 발의 법안에는 주민 보상체계 등도 마련됐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엇비슷한 법안을 내놓은 만큼 사소한 차이를 넘어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정감사 이후 법안 병합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하지만 여야가 얼마나 절박함을 갖고 법안 처리에 나설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정쟁에 치여 꼭 필요한 민생법안이 뒷전이 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력대란으로 미래 산업이 다 망가진 뒤 후회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