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내전 우려까지 나오는 미국 대선
미국 대선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열기가 뜨겁다 못해 사상 초유의 정치적 분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두 번이나 암살 위기를 맞았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선거 운동 사무실이 총격을 받았다. 선거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힘들다. 주요 경합주에서는 수백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릴 것이란 관측도 있다. 어느 진영이든 패배할 경우 순순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이미 트럼프는 “내가 지면 피바다(blood bath)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도둑질 막아라"

트럼프의 발언은 단순히 엄포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미 미국 사회는 2021년 1·6 의사당 폭동 사태를 겪었다. 각종 사법 리스크에 처한 트럼프는 이번에 당선되지 못하면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승리가 절박하다. 유세장에서 수시로 ‘도둑질을 막아라(Stop the steal)’라는 구호를 외친다. 자신이 패배하면 부정 투표 때문일 것이라는 암시다. 미국 공영 방송사 NPR과 PBS가 9월 27일~10월 1일 성인 유권자 1628명을 상대로 대선 여론조사를 한 결과 공화당원 유권자의 86%가 부정 투표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원 유권자가 같은 답변을 한 비율은 33%에 그쳤지만 이쪽 진영도 과열 양상인 건 마찬가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트럼프를 과녁 중앙에 놓아야 할 때”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각종 음모론도 확산하고 있다. 마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은 백악관이 지난달 상륙한 허리케인 헐린의 경로를 인위적으로 바꿔 민주당 우세지역을 피해 가게 했다는 루머와 관련해 “그들은 날씨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장단을 맞췄다.

미국 언론에서는 “내전 수준의 정치 분열”(뉴욕타임스)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내전’이라는 단어는 이제 미국에서 공공연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서부연합군과 연방정부군 간 충돌을 그린 영화 ‘시빌워’가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미 일부 주는 불법이민 문제 등을 두고 연방정부와 팽팽한 긴장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텍사스주정부가 지난 1월 주방위군을 동원해 국경순찰대의 접근을 막은 채 미국·멕시코 국경을 봉쇄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바이든 정부는 이 같은 국경 봉쇄는 불법이라며 소송을 냈고, 텍사스주는 연방정부가 이행하지 않은 국가 방어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맞섰다.

시험대 오른 자유민주주의

대선 결과 만에 하나라도 미국이 ‘피바다’가 된다면 그 여파는 미국 내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세계 질서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국제사회는 이미 각종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독일 저명 주간지 디차이트는 미국 내전에 대한 경고가 더는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짚었다.

미국 민주주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올해 제1 야당 대표가 흉기 피습을 당하고, 여당 국회의원도 괴한의 공격을 받은 한국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기만 없을 뿐이지 정치권의 증오와 불신은 미국 못지않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이런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보며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분열하면 공산전체주의 세력의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