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한강 책 있어요?" 전화 폭주…헌책방까지 난리났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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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이후 한강 작품 연일 '품절 행진'
헌책방에도 문의 '폭증'…"전화 5배 늘었다"
청계천 헌책방 '재고 無'…허탕 치는 손님도
"'한강 앓이', 독서 콘텐츠화로 이어져야"
헌책방에도 문의 '폭증'…"전화 5배 늘었다"
청계천 헌책방 '재고 無'…허탕 치는 손님도
"'한강 앓이', 독서 콘텐츠화로 이어져야"
"30년 넘게 이 자리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는데 이렇게 전화 많이 받긴 처음이야. 옛날에 나온 문고본 같은 거 찾으러 오는 나이 든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저번 주부턴 젊은 사람들도 거리에 많이 보인다니까. 그럼 내가 우스갯소리로 그래. 왜 청계천에서 '한강' 찾느냐고."
14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 옆 헌책방 거리. 거리 초입에 있는 헌책방 '밍키'를 운영 중인 채우식(66) 씨는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책 묶음을 가게 밖으로 내놓으며 이같이 말했다. 채씨는 지난주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헌책방 거리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한강의 작품이 연일 품절 행진을 이어가면서 중고 서적이라도 찾으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헌책방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강 앓이'에 잊혀졌던 골목마저 오랜만에 들썩이고 있다.
채씨는 "한강 책을 찾느라고 모든 사람이 난리이지 않나. 그만큼 헌책방 주인들도 가게와 창고에 재고가 있는지 찾느라 난리"라며 "재고가 한정된 만큼 대단히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겠지만, 거리가 활기를 찾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거기 한강 책 있어요?"…전화 문의량 5배 '폭증'
이날 오전 청계천 헌책방 상인들은 셔터를 올리고 책을 덮고 있던 방수포를 치우며 분주하게 영업 준비에 나섰다. 이미 영업 준비가 끝난 상인들은 거리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사이에서도 한강은 최근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상인들은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후 한강 작품을 찾는 전화가 쇄도했다고 입을 모았다. 채씨는 "주말에 받은 전화 10통 중 8통이 한강 작품이 있냐는 문의 전화였다. 전체 문의량도 평소보다 약 5배가량 늘었다"면서 "그런데 수상 다음 날인 지난 11일 이미 한강 작품은 모두 동이 났다"고 말했다. 국내 서적을 취급하지 않는 헌책방에도 문의가 이어졌다. 성경, 찬송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60대 업주 박모 씨는 "우리 가게까지도 전화가 와서 한강 책이 있냐고 묻더라"라며 "2000년대 초반 이후 이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 그야말로 난리다"고 말했다.
대형 서적의 등장과 온라인 상거래 활성화로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잊힌 거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한때 70여개의 헌책방이 운영되면서 거리에 인파도 북적였지만, 현재는 14개 업장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한강 책을 구하기 어려워진 최근 청계천 헌책방 거리도 그 '풍선 효과'로 인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1979년부터 남편과 헌책방을 운영해 온 60대 이모씨는 "보통 전화로 먼저 재고를 문의한 뒤 가게를 찾는 경우가 많아 주말에도 거리는 한산한 편인데 한강의 수상 이후 지난 주말 손님이 상당히 늘었다. 한 젊은 사람은 혼자 와서 한강 책을 구하려고 모든 헌책방을 다 들려보더라. 심지어 자주 가는 미용실 사장도 한강 책 있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수상 이튿날 아침 일찍 한 아저씨가 '채식주의자' 4권을 사 갔다. 총 1만2000원인 걸 1만원으로 깎아주기도 했다"면서 "팔고 나서 조간신문 통해 한강이 노벨상 받았다는 걸 알고 '그 아저씨 진짜 땡잡았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구하러 온 20대 대학생 김모 씨는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렸다. 김씨는 "전에 분명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집을 찾아보니 없더라. 주말에 서점에서도 살 수가 없어 오늘 헌책방을 들렸다"며 "이런 데선 운 좋으면 초판도 구할 수 있다는데 아쉽다"고 전했다.
'한강 신드롬'에 따라 헌책방 주인들도 재고 찾기에 나섰다. 유명 작가였던 만큼 매입한 작품 재고가 적지 않지만, 느닷없는 문의량 폭증에 업주들은 가게 혹은 별도로 마련한 창고에서 혹시 남아있는 한강 책이 있는지 찾기 바쁘다고 했다. 한 업주가 창고에서 '채식주의자' 2권을 찾아 전날 판매했다는 소식이 하루 만에 업주들 사이에 퍼졌을 정도라고 한다.
이날 한강의 '몽고반점'이 수록된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 권을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역시 오전에 막 입고된 책이었다. 업주는 "이 거리에 더 이상 한강 작품은 없다고 봐야 하는데 오늘 아침 가게 한쪽에서 해당 작품을 우연히 찾았다"며 "기자 양반은 운 좋은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수상 이후 한강 도서 판매량 910배↑…서점 발길 이어져
한강 작품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오랜 기간 불황을 겪던 출판 업계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교보문고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전체 도서 판매량이 910배 늘었다고 밝혔다. 출판사들도 한강의 작품 증쇄에 나선 상황이다.
이날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연일 품절이 이어지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작품을 각각 3000권, 1000권 입고했다. '채식주의자'는 여전히 품절 상태다.
매장에서 '소년이 온다'를 구입한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부끄럽지만 한강 책을 사려고 1년 반 만에 서점을 처음 찾았다"며 "주변에서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독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번 기회에 다시 책 읽는 버릇을 좀 들여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강 앓이'가 단기간 신드롬에 그치지 않고, 독서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독서의 콘텐츠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독서는 기본적으로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소비문화다. 따라서 한강 신드롬이 진정한 독서 열풍으로 이어지려면 독서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이 요구된다"면서 "일례로 책을 가지고 진행하는 팝업 스토어는 책 소비 방식의 가짓수를 넓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14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 옆 헌책방 거리. 거리 초입에 있는 헌책방 '밍키'를 운영 중인 채우식(66) 씨는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책 묶음을 가게 밖으로 내놓으며 이같이 말했다. 채씨는 지난주 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헌책방 거리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한강의 작품이 연일 품절 행진을 이어가면서 중고 서적이라도 찾으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헌책방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강 앓이'에 잊혀졌던 골목마저 오랜만에 들썩이고 있다.
채씨는 "한강 책을 찾느라고 모든 사람이 난리이지 않나. 그만큼 헌책방 주인들도 가게와 창고에 재고가 있는지 찾느라 난리"라며 "재고가 한정된 만큼 대단히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겠지만, 거리가 활기를 찾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거기 한강 책 있어요?"…전화 문의량 5배 '폭증'
수상 이튿날 오전 '채식주의자 4권' 횡재한 손님도
이날 오전 청계천 헌책방 상인들은 셔터를 올리고 책을 덮고 있던 방수포를 치우며 분주하게 영업 준비에 나섰다. 이미 영업 준비가 끝난 상인들은 거리 한쪽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사이에서도 한강은 최근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상인들은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후 한강 작품을 찾는 전화가 쇄도했다고 입을 모았다. 채씨는 "주말에 받은 전화 10통 중 8통이 한강 작품이 있냐는 문의 전화였다. 전체 문의량도 평소보다 약 5배가량 늘었다"면서 "그런데 수상 다음 날인 지난 11일 이미 한강 작품은 모두 동이 났다"고 말했다. 국내 서적을 취급하지 않는 헌책방에도 문의가 이어졌다. 성경, 찬송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60대 업주 박모 씨는 "우리 가게까지도 전화가 와서 한강 책이 있냐고 묻더라"라며 "2000년대 초반 이후 이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 그야말로 난리다"고 말했다.
대형 서적의 등장과 온라인 상거래 활성화로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잊힌 거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한때 70여개의 헌책방이 운영되면서 거리에 인파도 북적였지만, 현재는 14개 업장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한강 책을 구하기 어려워진 최근 청계천 헌책방 거리도 그 '풍선 효과'로 인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1979년부터 남편과 헌책방을 운영해 온 60대 이모씨는 "보통 전화로 먼저 재고를 문의한 뒤 가게를 찾는 경우가 많아 주말에도 거리는 한산한 편인데 한강의 수상 이후 지난 주말 손님이 상당히 늘었다. 한 젊은 사람은 혼자 와서 한강 책을 구하려고 모든 헌책방을 다 들려보더라. 심지어 자주 가는 미용실 사장도 한강 책 있냐고 물어볼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수상 이튿날 아침 일찍 한 아저씨가 '채식주의자' 4권을 사 갔다. 총 1만2000원인 걸 1만원으로 깎아주기도 했다"면서 "팔고 나서 조간신문 통해 한강이 노벨상 받았다는 걸 알고 '그 아저씨 진짜 땡잡았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구하러 온 20대 대학생 김모 씨는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렸다. 김씨는 "전에 분명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집을 찾아보니 없더라. 주말에 서점에서도 살 수가 없어 오늘 헌책방을 들렸다"며 "이런 데선 운 좋으면 초판도 구할 수 있다는데 아쉽다"고 전했다.
'한강 신드롬'에 따라 헌책방 주인들도 재고 찾기에 나섰다. 유명 작가였던 만큼 매입한 작품 재고가 적지 않지만, 느닷없는 문의량 폭증에 업주들은 가게 혹은 별도로 마련한 창고에서 혹시 남아있는 한강 책이 있는지 찾기 바쁘다고 했다. 한 업주가 창고에서 '채식주의자' 2권을 찾아 전날 판매했다는 소식이 하루 만에 업주들 사이에 퍼졌을 정도라고 한다.
이날 한강의 '몽고반점'이 수록된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 권을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역시 오전에 막 입고된 책이었다. 업주는 "이 거리에 더 이상 한강 작품은 없다고 봐야 하는데 오늘 아침 가게 한쪽에서 해당 작품을 우연히 찾았다"며 "기자 양반은 운 좋은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수상 이후 한강 도서 판매량 910배↑…서점 발길 이어져
"독서는 인내 필요한 소비문화…'콘텐츠화' 노력 필요해"
한강 작품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오랜 기간 불황을 겪던 출판 업계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교보문고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전체 도서 판매량이 910배 늘었다고 밝혔다. 출판사들도 한강의 작품 증쇄에 나선 상황이다.이날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연일 품절이 이어지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작품을 각각 3000권, 1000권 입고했다. '채식주의자'는 여전히 품절 상태다.
매장에서 '소년이 온다'를 구입한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부끄럽지만 한강 책을 사려고 1년 반 만에 서점을 처음 찾았다"며 "주변에서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독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번 기회에 다시 책 읽는 버릇을 좀 들여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강 앓이'가 단기간 신드롬에 그치지 않고, 독서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독서의 콘텐츠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독서는 기본적으로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소비문화다. 따라서 한강 신드롬이 진정한 독서 열풍으로 이어지려면 독서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한 업계의 노력이 요구된다"면서 "일례로 책을 가지고 진행하는 팝업 스토어는 책 소비 방식의 가짓수를 넓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