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합의했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자원 빈국의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OPEC 회원국 중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약속을 깨고 석유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사실 OPEC 회원국 간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카타르 에콰도르 앙골라는 불만을 품고 탈퇴했다. 한국과 같은 비산유국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다. OPEC 회원국이 반복하는 담합과 배신은 과점 시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카르텔과 그 이면에 숨은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담합과 배신…과점시장 '카르텔'이 실패하는 이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카르텔

과점 시장이란 소수의 공급자가 비슷하거나 동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시장을 말한다. 철강, 정유 등 초기 투자비가 많고 생산시설 운영에 막대한 고정 비용이 들어가는 산업이 대체로 과점 형태를 띤다. 과점 시장에선 적게는 2개, 많아도 5개 정도 기업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 사우디 러시아가 전 세계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 시장도 과점 사례다.

과점 시장 생산자는 ‘전략적 상황’에 놓인다. 전략적 상황이란 상대방의 대응을 생각해 가면서 나의 전략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예를 들어 LG전자가 냉장고를 대폭 할인하기로 했다고 치자. 이때 LG전자는 삼성전자의 대응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똑같이 할인 판매로 대응하면 LG전자의 할인 효과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독점 시장과 완전경쟁 시장에선 이 같은 전략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독점 기업은 남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완전경쟁 시장에선 경쟁자가 너무 많아 남을 신경 쓰는 것이 의미가 없다.

과점 시장의 기업들은 담합의 유혹을 느낀다. 서로 합의해서 적당한 생산량을 결정하고 가격을 올리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이렇게 공급자들이 가격과 생산량을 합의해 정하는 것을 담합, 그렇게 형성된 모임을 카르텔이라고 한다.

협력이냐 배신이냐

과점 기업들이 담합하면 독점 기업이 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하지만 OPEC의 예에서 보듯 카르텔을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과점 시장의 공급자들은 담합할 유인도 있지만, 담합을 깰 유인도 있다.

어느 동네에 커피집이 A와 B 둘뿐이고, 하루 커피 수요가 1000잔, 가격은 3000원이라고 하자. 두 집이 어느 날 커피를 500잔씩 만들고, 가격은 400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다음날 A커피집 사장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약속을 깨고 커피 한 잔에 3000원을 받으면 손님이 우리 가게로 몰리겠지? B커피집 사장도 똑같이 생각한다. 카르텔은 깨지고, 커피값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수요와 공급이 단기적으로는 비탄력적이지만, 장기적으론 탄력적이라는 점도 카르텔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OPEC 회원국이 담합해 석유 생산량을 줄이면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급등한다. 비싼 값을 주고라도 당장 쓸 석유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석유의 수요와 공급이 단기에 비해 탄력적이다. 유전이 새로 발견돼 OPEC 회원국 외에 다른 산유국이 등장할 수도 있고, 석유를 대체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개발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OPEC 회원국이 일사불란한 대오를 유지하더라도 담합의 효과는 약해진다.

통신 요금이 비슷비슷한 이유

정부는 카르텔이 안고 있는 내재적 불안정성을 단속에 활용한다.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하는 기업에 과징금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명시적 합의 없이 이뤄지는 암묵적인 담합도 있다.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까 말까 눈치를 보다가 업계 1등 기업이 가격을 인상하면 다른 기업들도 가격을 비슷한 폭으로 올리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휘발유 가격부터 통신 요금, 은행 금리, 라면값, 과자값까지 업체마다 큰 차이가 없다. 이런 경우 기업 간에 사전 회합이 없었다면 담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과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담합과 비슷하다.

OPEC의 결속력 약화가 석유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되듯이 대개 카르텔이 깨지는 것이 소비자에게 이롭다. 반면 카르텔 붕괴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사례도 있다. 군비 경쟁이 그렇다. 국가 간 군축 합의는 이뤄지기도 어렵고 지켜지기는 더 어렵다. 그 결과 군비 확장 경쟁이 끊이지 않는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