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78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거짓말(?)
‘음악가 경련(musician cramp)’이라는 병명이 있다. 다른 일을 할 때 멀쩡하던 손가락과 어깨 등의 근육이 연주 직전에 경직되거나 떨리는 마비 증세다. 무대 위에서 한없이 우아한 모습의 클래식 연주자들. 이들은 사실 숙명적으로 온몸에 통증을 달고 산다. 늘 같은 자세로 건반이나 지판을 짚는 동작, 기울어진 자세로 활을 켜는 걸 반복하다 보니 “목, 허리, 손목까지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말을 20대 연주자에게서도 자주 듣는다. 알고 보면 악기 연주는 중노동에 가깝다. 매일 반복되는 연습과 리허설, 무대 위에서의 스트레스까지 생각하면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할 노동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피아노 연주 한 시간은 마라톤 완주에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노년에 접어든 연주자를 무대에서 마주할 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흔해 빠진 위로도 라이브 무대 위에선 힘을 잃는다. 지난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한 78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는 그런 걱정을 새삼 부끄럽게 했다.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오로지 쇼팽이 그 곡을 작곡한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청중을 압도했다. 백건우는 열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니, 연주 경력만 68년 차. 마침 이번 공연 전 인터뷰에서 그에게 허리나 어깨, 손목 등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난 연주하면서 단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어요. 바른 자세로 피아노를 대해서 안 아픈 것 같아. 만약 피아노를 치는데 아프다면, 피아노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잘못됐기 때문에 아픈 거예요.”

아픈 데가 없고, 아팠던 적도 없다는 백건우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평생을 연주하고도 아직 연주하고 싶은 곡들이 남아 있고, 모든 곡을 대할 때 마치 사랑하는 사람처럼 아끼고 껴안는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다는 백건우. 아팠던 적이 없다는 말보다 평생 음악에 미쳐 고통마저 잊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해석일지 모른다.

김보라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