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원들이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창단 공연으로 준비한 ‘샤이닝 웨이브’의 1부 작품 ‘파키타’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의전당 제공
지난 14일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원들이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창단 공연으로 준비한 ‘샤이닝 웨이브’의 1부 작품 ‘파키타’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의전당 제공
김주원(47)은 2012년까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였고 황혜민(46)은 2017년까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였다. 세상은 그들을 라이벌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선화예술중 시절부터 애틋한 선후배이자 서로를 지지하는 업계 동료였다.

양대 발레단 간판스타들은 은퇴 후 각자의 삶을 살다가 올 들어 부산에서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부산에 방을 얻어 놓고 1주일에 사나흘을 함께 지낸다. 무대를 떠난 이들이 부산까지 내려온 건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을 돕기 위해서.

올초 김주원이 2024년도 발레단 예술감독에 위촉됐고 절친한 예술가 황혜민을 수석지도위원으로 추천했다. 둘은 오디션에서 단원들을 선발했고 11월 15일부터 사흘간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창단 공연 ‘샤이닝 웨이브’를 올린다. 이들을 최근 부산 시민회관에서 만났다.

김주원 예술감독은 “해외나 서울로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고 무용수들이 커리어를 쌓을 곳이 필요하”며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이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황혜민 수석지도위원은 “2027년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완성됐을 때 발레단이 상주 예술단체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 예술감독 김주원(오른쪽)과 수석지도위원 황혜민.  영화의전당 제공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 예술감독 김주원(오른쪽)과 수석지도위원 황혜민. 영화의전당 제공
김주원은 부산 출신으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선화예술중에 진학하면서 부산을 떠난 이후 쭉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했기 때문. 새로운 발레단을 꾸린 김주원은 “고향을 위해 예술가로서 쌓은 경험을 나눌 소중한 기회”라며 “춤만 추던 무용수 시절과는 달리 예술감독이 되면서 예산부터 기획까지 수많은 도전과제를 해결하며 배우고 있다”고 했다.

황혜민은 부산시민회관에 마련된 연습실 3, 4층을 부지런히 오가며 단원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가 한 단원의 팔꿈치와 발꿈치 위치를 바로잡아주자 동작이 훨씬 우아하게 변했다. 김주원은 연습 장면을 지켜보다가 황혜민과 의견을 수없이 주고받았다.

‘샤이닝 웨이브’라는 공연명에서는 부산 앞바다에 일렁이는 파도가 연상된다. 그러자 김주원은 “파도가 부산만이 아니라 더 넓은 곳으로 힘차게 나아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1부에서는 고전 발레 파키타의 3막 결혼식 장면이, 2부에선 고래와 바다의 정령들이 등장하는 네오 클래식 창작 발레가 무대에 오른다. 네오 클래식 발레는 고전 발레와 같이 발레리나가 토슈즈를 신는 장르를 말한다. 황혜민은 “고전 발레의 테크닉과 연기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게 현재 발레단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 시즌 무용수로 선발된 이들의 배경은 다양하다. 정시에 출근해 바를 잡고 몸을 푸는 클래스부터 작품 연습을 이어가는 루틴을 익숙하게 만드는 시간도 적잖이 소요됐다고. 김주원과 황혜민은 “하나하나 틀을 갖춰가는 발레단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김주원은 “발레라는 예술이 주는 힘을 평생 경험해왔다”며 “각박한 환경, 서로 불신하는 세상 속에서 예술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부산 오페라하우스발레단이 반짝이는 파도처럼 부산 시민들, 더 나아가 세상의 많은 분에게 따스함을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