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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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 다니던 이모씨(31)는 3년 전 직장을 관두고 유튜브 편집을 중심으로 ‘N잡’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편집 일감이 끊길 때는 로고 디자인 등으로 벌이를 채운다. 이씨는 “요즘은 구인 플랫폼을 통해 쉽게 일감을 구할 수 있는 데다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벌이가 훨씬 괜찮아 만족하고 있다”며 “유튜브 편집 일 외에 다른 일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격증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모씨(35)는 전문대를 졸업한 뒤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6년 전 네일아트숍을 창업했다. 전문성 없는 사무직을 전전해봐야 벌이도 마뜩잖고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전보다 전문성 있는 직업을 찾아 만족하고 있다”면서도 “대기업같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면 창업은 안 했을 것 같다”고 했다.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취업을 포기하고 창업하거나 프리랜서로 진로를 바꾸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구인 플랫폼이 활성화하면서 비정기적인 일감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프리랜서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급증하는 창업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데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취업 대신 네일숍 차려

낮엔 유튜브 편집, 밤엔 네일숍 사장…'N잡러' 청년 200만 시대
15일 통계청의 ‘전국 사업체조사’에 따르면 대표자 연령이 29세 이하인 사업체는 2020년 22만5597곳에서 2023년 26만177곳으로 15.33% 늘었다. 모든 연령대 중 사업체가 가장 급격히 늘어났다. 또 30~39세가 대표인 사업체가 80만8033개에서 88만774개로 9% 늘어 20대 다음으로 많이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20·30대 창업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이후 구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이를 통해 비정기적 일감을 찾는 2030 프리랜서도 급증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병·의원 종사자를 제외한 비임금 근로자는 2018년 604만2288명에서 2022년 837만7056명으로 233만4768명 증가했다. 38.6% 늘어난 수치다.

특히 30세 미만 비임금 근로자가 2018년 141만389명에서 2022년 203만2544명으로 43.8% 늘며 60세 이상 다음으로 가장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보면 30세 미만 비임금 근로자가 전체 비임금 근로자 중 가장 많았다. 비임금 근로자란 특정 업체에 고용되지 않고 일의 성과에 따라 수당을 받아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프리랜서 등을 지칭한다. 배달대행, 골프장 캐디, 유튜브 편집자 등이 이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취업문이 좁아진 데다 플랫폼 등의 발달로 창업이나 프리랜서를 택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 중심의 양질의 일자리가 전체 10%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취업문이 더 좁아지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유튜브 편집 등으로 고소득을 올린 사례가 알려지면서 차라리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고 했다.

경기 둔화에는 가장 먼저 타격

낮엔 유튜브 편집, 밤엔 네일숍 사장…'N잡러' 청년 200만 시대
일하는 형태가 다양해지고 어지간한 직장인보다 벌이가 좋은 경우도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란 문제가 이런 결과를 낳은 만큼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에 의뢰해 취업준비생 272명에게 창업을 고민하는 이유를 묻자 ‘취업이 어려워서’란 답변이 41.1%로 압도적이었다. 그다음으론 ‘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 싶어서’가 36.8%로 많았다. 지난해 취업준비생 3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관심사에 맞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변한 사람이 45.1%로 가장 많았고, ‘조직 생활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41.6%), ‘취업이 어려워서’(40%) 등이 그 뒤를 이었다. 1년 새 자아실현보다는 취업의 어려움이 창업을 고려하는 이유로 더 크게 부각된 것이다.

이른바 ‘청년 사장’이 크게 늘어났지만 경기 둔화의 직격탄도 이들에게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재위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연령별 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20대는 전체 폐업 중 20.4%를 차지했다. 30대 폐업률도 14.2%에 달해 40대(9.9%), 50대(8.0%), 60대(7.0%), 70세 이상(6.7%) 등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높은 수준의 폐업률을 보였다.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에도 상당수는 소득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다.

2022년 국세청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4368건 중 75.1%(860만9018건)가 연간 소득이 1200만원 이하였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36)는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최근 폐업하거나 수개월간 일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예전에는 받지 않던 작은 의뢰까지 모두 받고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서는 청년층 창업 붐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알바천국이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 직장인 등 6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창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대학생은 81.6%로 지난해 85.8%보다 소폭 줄었다. 창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직장인 역시 79.5%로 조사돼 지난해(87.8%) 대비 감소했다.

하 교수는 “정부가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에 집중하는 한편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청년 창업은 컨설팅 및 법률 지원을 통해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슬기/김대영 기자

■ 잡리포트 취재팀
백승현 좋은일터연구소장·경제부 부장
곽용희 경제부 기자·이슬기 경제부 기자
권용훈 사회부 기자·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