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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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반도체 노광장비 기업 네덜란드 ASML의 3분기 예약 매출이 시장 전망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주가가 16% 넘게 폭락했다. 특히 내년 가이던스도 하향 조정돼 반도체 부문 전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ASML은 3분기 매출이 75억유로(약 11조1500억원), 순이익은 21억유로(약 3조12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모두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수치였다. 그러나 3분기 예약 매출은 26억유로(약 3조8600억원)로 시장 전망치(56억유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ASML은 내년 매출 가이던스(자체 실적 전망치)도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ASML은 내년 매출이 300억∼350억유로(약 44조6000억∼52조5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ASML이 제시했던 이전 전망치의 절반 수준이며, 시장 전망치(358억유로)도 밑돌았다.

ASML은 실적 부진의 이유로 반도체 내 인공지능(AI) 분야를 제외한 다른 부문의 침체를 들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AI 분야는 강력한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로직·메모리 등 다른 부문은 회복에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며 "회복 부진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ASML은 3분기 실적을 발표하기 전, 자사 웹사이트에 실적 정보를 사전 유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에 원래 16일로 예정됐던 실적 발표가 하루 앞당겨졌다. ASML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기술적 오류로 인해 3분기 실적과 관련된 정보가 웹사이트에 잘못 게시됐다"며 "투명성을 위해 실적 발표일을 앞당겼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실수가 실적 부진을 더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CJ 뮤즈 캔터피츠제럴드 애널리스트는 “이번 발표가 사고인지 계획된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이번 실적은 실망스럽다”이라며 “인텔과 삼성의 약세로 인해 ASML의 2025년 실적이 예상보다 더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ASML 주가는 16.26% 폭락하며 1998년 이후 가장 큰 일일 하락 폭을 기록했다. ASML 주가는 지난 7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이날까지 3분의 1가량 하락했다.

ASML의 실적 부진은 반도체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전날 사상 최고가로 마감했던 엔비디아는 4.5% 내렸고, AMD는 5.2%, 브로드컴은 3.4% 하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5.3% 떨어졌다. 특히 미국 주요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10.7%)와 램리서치(-10.9%)는 2020년 이후 최악의 하락세를 기록했으며, KLA(-14.7%)는 약 10년 만에 가장 큰 하루 하락 폭을 보였다.

반도체 업계는 AI 가속기 분야와 비AI 분야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열풍에 힘입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비AI 부문 반도체 기업들은 재고 과잉 문제를 겪고 있다.

AI 열풍을 타지 못한 인텔은 독일과 폴란드의 계획된 공장 가동을 연기하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D램 등 메모리사업 부문 3분기 영업이익의 부진을 밝히며 이례적으로 ‘반성문’까지 발표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