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노르보텐의 주도이자 인구 약 4만 명의 항구도시인 룰레오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30분을 달리면 보덴이라는 시골 도시가 나온다. 가문비나무가 마치 성냥처럼 빼곡히 꽂혀 있는 숲과 호수의 마을에 스테그라(옛 H2그린스틸)는 ‘비밀 기지’를 짓고 있다. 세계 첫 무(無)탄소 철강을 양산하기 위한 공장이다. 내년 생산을 시작해 2030년까지 500만t의 철강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포스코 2030년 목표치의 10분의 1가량이다.

260㏊에 달하는 숲을 통째로 밀어버린 건설 현장 주변에선 마을 주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먼지와 소음이 일상이지만 한국이었다면 어딘가 반드시 걸려 있을 법한 공사 반대 현수막 하나 없다. 지난달 룰레오에서 만난 레나 세게를룬드 노르보텐투자청 최고경영자(CEO)는 “노르보텐주 전체에 수소 생산, 저장, 운반, 활용 등을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까지 나서 수소전환 지원

州 전체를 '수소경제 실험실'로…탈탄소 모범답안 쓰는 스웨덴
노르보텐은 한국의 강원도 같은 곳이다. 옛 사미족(族)의 땅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한 수소 에너지 실험실로 변신 중이다. 스웨덴의 야심은 명확하다. 수소 생산, 저장, 운반, 활용에 관한 완벽한 모범 답안을 만드는 것이다. ‘돈을 버는 그린 혁명’을 입증하는 것이 스웨덴의 최종 목표다.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노르보텐은 이를 증명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실이다. 스테그라를 비롯해 스웨덴 기업들은 2030년까지 노르보텐에 약 2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2~3%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소 경제를 구축하려는 스웨덴의 야심은 ‘배수의 진’에 가깝다. 스웨덴의 수소 관련 기초연구를 총괄하는 CH2ESS의 세실리아 월마크 센터장은 “스웨덴 최대 철강사인 SSAB의 룰레아 공장 고로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해체될 예정”이라며 “그린 혁명이라는 물길을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스웨덴은 수년간의 논의 끝에 2016년 ‘화석연료 없는 스웨덴(Fossil Free Sweden)’으로 출범했다.

“에너지 패권의 판도를 바꿀 것”

이런 이유로 스웨덴의 수소 전략은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세게를룬드 CEO는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목표”라며 “중앙의 에너지청과 혁신청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주정부(노르보텐)와 지역 코뮌(약 290개에 이르는 스웨덴의 최소 행정단위)은 도로, 항구, 철도, 집, 헬스케어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스테그라와 SSAB가 각각 보덴과 룰레오에 수소환원철 공장을 짓는 사업에도 항구로 이어지는 도로와 전력망 신설을 위해 스웨덴교통청, 국영전력네트워크를 비롯해 국방부까지 나서고 있다. 스웨덴 비상사태대비국은 이미 수소 운송 파이프라인 처리에 관한 국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을 정도다. 월마크 센터장은 “최대의 효용을 얻기 위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와도 수소 동맹을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테그라의 보덴 공장은 불과 1년 만에 건설 허가가 나왔다. 행정 절차가 느리기로 소문난 스웨덴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올 9월엔 스웨덴에너지청에서 1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에 비해 글로벌 수소환원철 시장을 두고 스웨덴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포스코는 아직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위한 부지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스웨덴이 수소 경제를 ‘소버린 테크’로 삼고 있는 건 에너지 패권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북유럽과학기술연구센터에 따르면 CH2ESS 등 스웨덴 연구지원기관이 작년 말까지 5년간 수행한 수소 관련 연구 프로젝트는 총 232개에 달한다.

룰레오·스톡홀름=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