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7년부터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를 반영하기 위해 본격적인 검토에 나섰다. 현행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가 빠진 채 전·월세 임차료만 포함되면서 체감물가와 큰 괴리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자가주거비가 포함되면 집값 상승기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금보다 대폭 높아질 전망이다.

○집값 상승 반영 못하는 물가

"통계착시 없앤다"…소비자물가에 집값상승률 반영 검토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통계청은 자가주거비를 소비자물가지수 주지표에 반영하고 산정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한국부동산분석학회에 의뢰한 ‘자가주거비지수 산정 방식 개선 및 주지표 전환 연구’ 용역 결과를 토대로 분석하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자가주거비 산정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며 “다만 자가주거비를 주지표에 반영할지는 확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계청이 매달 공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엔 자가주거비가 제외돼 있다. 통계청은 자가주거비가 포함된 지수를 1995년부터 별도 발표하고 있지만, 이는 주지표가 아니라 보조지표다. 이마저도 자가주거비를 별도 조사한 것이 아니라 보유 주택을 전세나 월세로 빌려줬다고 가정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대료다. 자신이 매입해 거주하는 주택에 대한 기회비용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는 시기에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체감물가의 괴리가 커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자가주거비가 빠져 있어 집값이 상승하는 시기에 물가 상승률을 낮추게 하는 착시 효과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때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의 주택 매매가격이 급등한 2019년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에 머물렀다. 당시 주택가격매매지수를 반영한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포인트가량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자가주거비를 주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절반인 19개국이 자가주거비를 주지표로 활용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은 자가주거비가 전체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달한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16%, 일본은 10%다.

○가중치 높아 물가 영향 커져

당초 통계청은 자가주거비를 물가지수에 반영하는 방안에 부정적이었다. 통계 품질이 저하되고, 집값에 따른 물가의 과도한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현행 물가지수와 체감물가의 괴리가 커진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국책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자 뒤늦게 본격적인 검토를 시작했다. 한국은행도 물가 관리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자가주거비를 주지표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집값이 물가에 반영되지 않아 한은의 통화정책이 실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물가 가중치의 기준연도 개편이 이뤄지는 2026년 12월 자가주거비를 물가 주지표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계청은 2~3년 주기로 물가지수 품목 및 가중치를 개편한다. 자가주거비와 전·월세에 대한 가중치도 이때 반영할 예정이다. 지금도 전·월세는 물가지수를 구성하는 458개 품목 중 가중치가 가장 높다.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8%다. 가중치가 높은 품목일수록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자가주거비가 주지표에 반영된다면 전·월세보다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보조 지표에서 자가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5.8%로, 전·월세(9.8%)의 세 배에 육박한다. 각 분야에 미칠 파급 효과도 거셀 전망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은 매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액이 인상된다. 건설 공사비에도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다. 기업의 노사 임금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